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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30년 지기 국민은행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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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민은행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이름값도 못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고객이 3000만명을 넘어섰다고 자랑한다. 우리나라 전 국민의 60%가 고객이라니, 가히 '국민의 은행'이라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다.

최근 1년여 동안 국민은행 임직원이 저지른 사고와 탈선, 부정과 비리는 3000만 고객에 대한 배신일 뿐더러 '국민'이란 이름에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으니 이참에 국민은행은 이름에서 '국민'을 떼내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이미 지주회사나 대부분의 계열사는 '국민'을 지우고 KB라는 영문자를 쓰고 있지 않은가.
애꿎은 은행 이름을 놓고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국민은행은 말 그대로 서민의 편에 선 국민의 은행으로 출발했다. 은행 문턱이 높던 시절에도 국민은행은 달랐다. 서민에게는 생활자금, 전세자금, 소액 사업자금을 융통해주는 동반자였고 어려운 대학생에게는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대기업 금융 대신 소액 산매금융만을 다루는 까닭에 유독 점포가 많았고 고객이 넘쳤다. 업무는 폭주했지만 행원들은 어느 은행보다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런 국민은행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민영화로 국책 특수은행이란 굴레에서 풀려나면서부터다. 장기신용은행 ㆍ 주택은행과 합치면서 국내 최대 공룡은행으로 올라서자 기세는 한층 등등해졌다. 가슴에는 '리딩 뱅크'란 이름표까지 달았다. 은행업 집중도가 높은데 지주제가 필요한가 라는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 20여년간 걸어온 국민은행의 길은 외견상 급격한 양적 팽창이었다. 하지만 안으로는 균열과 추락의 행진이었다. 주인 없는 은행, 이질적 구성원, 산매에서 도산매금융으로의 전환, 금융 그룹화로 압축되는 국민은행 변천사의 뒤쪽은 낙하산 폐해와 인사 갈등, 조직 분열, 충성도의 실종, 초심의 와해로 점철됐다. 최근 빈발하는 사고와 임직원 일탈은 일시적 돌출 현상이 아니다. 조직의 구조적 병폐가 쌓여서 터진 필연의 결과다. 세상 사람들이 '리딩 뱅크'란 말 대신에 '2류 은행' 또는 '사고 뱅크'라 부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오랜 고객이라면 조직의 문제를 떠나서도 국민은행의 변심 내지 거대 금융회사의 관료화 과정을 피부로 느꼈으리라. 털어놓자면 나도 국민은행 고객이다. 001로 시작하는 30년 넘은 본점 영업부 발행 통장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 처음 만든 국민은행 통장은 그래서 추억이 어린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다.

국민은행의 배반을 직접 경험한 것은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다. 대출금 이자 조정 상담에 담당자는 냉랭했다. 다른 은행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바꾼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출해 준 은행에서 감사 카드와 함께 장미꽃이 배달된 것이다. 이때 직감했다. '국민은행은 더 이상 과거의 국민은행이 아니다.' 그런 씁쓸한 추억은 최근 카드 신용정보 유출 대란이 일어났을 때 반복됐다.

국민은행의 배반은 국민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인 없는 민영화 공기업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문제다. 여기에 '돈'이라는 금융회사 특수성이 더해지며 비리가 증폭됐다. 국민은행은 최근 1개월간의 '내부 비리 고발기간'을 선포했다. 오죽하면 그런 비상수단까지 동원했을까.

하지만 즉흥적 요법으로 치유되기 어려울 만큼 병색은 깊어 보인다. 중병의 실체인 '낙하산 증후군'과 보신에 급급하는 낙하산 장본인들이 버티고 있는 한 그렇다. 순이익이 곤두박질 친 지난해에도 KB금융지주 임원 연봉은 평균 59.7%가 올랐다고 한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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