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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고집 토종', 금강만 살어리랏다

최종수정 2014.03.24 09:05 기사입력 2014.03.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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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구두를 사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에 밀려 매장 유리창이 깨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금강제화는 1년에 두 번있는 세일때는 영업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셔터 문을 내렸다가 다시 올려야했다. 매장에 전시된 제품이 동나 새로 진열해야 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고객 응대를 직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는 이 얘기는 3대 토종제화브랜드인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이 국내 제화시장을 싹쓸이했던 1980년대 일화다.

이들 토종 브랜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민 구두'로 불리며 수입 브랜드가 넘볼 수 없는 제화시장의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신규 브랜드의 도전, 수입신발의 공세 속에서 '한우물'을 판 기업은 그런데로 실적을 유지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에스콰이아(기업명 이에프씨)는 최근 자금난을 못 견디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창업자인 고 이인표 회장은 1961년 9월 명동의 33㎡(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사업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최고급 수제화 생산에 매달렸고, 에스콰이아는 1970년대 '대통령이 신는 구두'로 이름을 알리면서 대기업 오너가 직접 방문해 주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에스콰이아의 위기는 의류사업에 손을 대고부터 시작됐다. 1988년 '비아트'를 론칭한 뒤 의류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고, 상품권 경쟁에서 백화점에 밀리면서 경영이 악화됐다. 2009년 사모펀드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에 매각된 이후에도 실적은 매년 곤두박질 쳤다. 2010년 7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 53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설상가상으로 전 직원의 35%에 달하는 230명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로 전면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에스콰이아는 지난해 본사를 다시 서울로 이전하고 다방면에 걸친 체질개선을 시도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957년 미진양화라는 상호로 출발한 엘칸토는 197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토털패션그룹으로 변신하는 사업확장이 무리수였다. IMF 외환위기 때 부도를 내면서부터 엘칸토의 고난은 시작됐다. 자구노력과 영업정상화를 위해 힘썼지만 200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1년 이랜드리테일로 인수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강제화만이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를 누리던 3대 제화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건재하다. 그나마 지난 60년간 '신발'과 '가죽'이라는 한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덕이다. 보수적 경영이 성장을 가로막긴했지만 장수의 원동력은 됐다. 금강제화는 남성 신발 브랜드 '리갈'로 성장한 이후 운동화브랜드 스프리스와 신발멀티숍 레스모아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등 사업확장을 신발과 가죽 분야로만 확장했다.

금강제화는 2011년 매출액 3896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2년 3715억원, 2013년 3485억원으로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2011년 143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2년 절반 수준인 72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74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2%대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노후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계획"이라며 "다만 신발과 가죽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사업 확장"이라고 말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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