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남에 가정남..슈퍼파파 되겠다고?
아버지는 我不知(나 자신도 모르는 사람)다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휴, 딸이 아니라 돈덩어리예요". 택시기사 아저씨가 긴숨을 내 뱉는다. 막 택시에 올라타자, 조수석에 앉았던 아가씨가 전철역 앞에서 돈도 안내고 휭하니 내린 뒤였다. 누군지 물어보니 막내딸이란다. 언니 둘에 이어 명문대에 합격했다. 교대에 가라고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단다. 가고 싶은 대학을 가려는 딸과 견디기 힘든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는 아빠 사이의 갈등이 냉기로 남아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어요". 부녀간 싸움의 승패는 상처만 남긴 채 결론났다.
"도대체 어떻게들 사는지 궁금해". 애 둘을 둔 친구가 있다. 대입기숙학원에 들어간 아들과 미대 진학을 꿈꾸는 딸. 둘을 합한 진학비용이 한 달에 400만원 이상 든다. 입시경쟁과 무리한 사교육을 나무라던 친구다. 자식이 하겠다는데, 와이프가 시킨다는데 어떻게 당해 내나. 기본만 하는데도 힘들어 죽겠단다. 와이프가 "옆집 누구는 어떻고" 하면 더 죽겠단다. 옆집에는 무슨 묘수가 있나 궁금해 한다. "뭐 다른 구멍이라도 있나?" 옆집사람도 이 친구를 궁금해 할 거다. 구멍 없다. 힘들면서 아닌 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를 겪은 베이비부머들은 자신이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식교육에 돈과 정성을 쏟아 붙는다.
송강호가 이혼하자는 아내에게 하소연한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데" "그 돈으로 먹고 살았잖아" "배운게 이 짓 뿐이야" "이런 줄 알았잖아" 많은 아버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다. 깡패 강인구의 얼굴 위로는 험한 사회속에서 아둥바둥 애쓰지만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초라한 대접을 받는 이땅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번듯한 직업, 돈 잘 버는 아빠, 이해심 많고 가정적인 삶.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버지상을 감내할 아빠는 과연 몇 명일까? 자신의 노력만으로 사회적 성취와 가정의 행복을 일궈낼 수 있는 슈퍼맨은 얼마나 될까? 영화속 조폭의 모습속에서 삶에 허덕이며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한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다. 아빠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아빠 어디 가'도 마찬가지다. 부럽다. 돈도 벌고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도 있으니. 준수, 윤후, 지아, 추사랑 참 너무 예쁘다. 남의 아이도 이 정도인데 내 아이는 얼마나 예뻤을까. 그런데 이미 다 커버렸다. 안 놀아줘도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그냥 슈퍼맨이었다. 가장 좋은 물건, 가장 맛있는 반찬. 좋은 것은 모두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의 한 마디는 법이었고 질서였다. 요즘 젊은 아빠들은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노력하는 슈퍼맨이다. 그런데 우리는 슈퍼에서 라면 사다 끓여 먹는 슈퍼맨 신세가 됐다. '어' 하다 보니 송강호꼴 됐다. 열심히 돈만 벌면 제대로 아빠 노릇 하는 줄 알았다. 근데 열심히 벌어봤자 애들 교육비 마련하기도 버겁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아이들 때문에 돈 걱정하지 않는다. 아내는 결혼 때 전세비는 마련해 줘야 하고 원하면 유학을 보내자고 한다. 결혼하려면 10년정도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공공임대주택이 많아진다. 또 유학가라고 하면 틀림없이 안간다. 고등학교 때도 반발해 캐나다 유학을 못 보낸적이 있다. 고맙게 생각한다. 본인이 철들고 뭔가 뜻이 세워지기 전에는 안갈 게 분명하다. 고마워, 철없는 아들아. 이런 걱정보다는 노래방에 자주 함께 갈 생각이다. 지난번에 나는 산이의 '내가 아는 사람'을, 아들들은 자두의 '김밥'을 배웠다. 서로 배워 잘 썼다. 가훈을 "함께 있어 가족이다. 함께 놀자"로 정할까 보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