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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力國力]근무중 아기전화 울렁증…직장맘 '눈칫밥'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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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과제-①보육]아빠도 보육의 한축 맡아야

국공립 시설 늘지만…2002년보다 비중 1%P 떨어져
어린이집 12시간 운영 규정 말뿐…관리감독 허술해
'양육자=여자' 인식 바껴야…사회적 공조 절실


[女力國力]근무중 아기전화 울렁증…직장맘 '눈칫밥'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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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 수도권 한 대학의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32세)는 어김없이 오전 6시면 일어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깨우고 바로 식사와 출근 준비를 한다.

오전 6시50분, 식사를 끝낸 남편이 출근하기 위해 나선다. 10분 후 곤하게 잠든 아들을 깨운다. 잠에서 깨지도 않은 아들한테 아침 밥을 먹으라며 다그친다. 결국 가장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주며 한 숟가락씩 떠먹인다. 이 시간은 거의 전쟁이다.

시곗바늘은 벌써 오전7시30분을 가리킨다. 식사를 서둘러 마무리한 뒤 씻기고 옷을 입힌다. 오전 8시 아이를 시어머니께 인계하고 사무실로 향한다. 어린이집이 집 근처에 있지만 오전 8시30분이 돼야 문을 연다. 그 시간에 등원시키면 5분 정도 지각한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직접 등원시켜봤다. 그런데 교사가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른 아이들은 오전 9시가 넘어야 등원한단다. 그 후론 어린이집 등원도 시어머니 몫이 됐다. 오전 7시30분부터 문을 연다는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싶지만 1년6개월째 대기다. 다음 달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올해도 꼼짝없이 대기를 해야 한다. 어린이집은 통상 3월에 신입 원아를 받는다.
오전 8시40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연초라 매일 월요일 같이 분주하고 신경 쓸 일도 많다. 결혼한 여직원의 퇴사로 공석이 생겨 더욱 바빠다. 팀장들은 "남자 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후 2시,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올랐다"는 전화를 받는다. 시어머니께 병원 진료를 부탁드렸다. 싱숭생숭하다. 오후 6시30분 부터 시작한 회식이 오후 10시까지 이어진다. 도저히 더 있을 수가 없어 동기 한 명에게 귓속말로 알리고 몰래 빠져나왔다.

오후 10시40분, 집에 돌아오니 시어머니는 지친 모습으로 계시고 아들은 빨간 얼굴을 하고 잠들어 있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는 남편은 아직 귀가 전. 시어머니를 배웅한 후 바로 방을 닦고 설거지를 했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11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수도권 시집 근처로 이사하고 이직을 감행한 게 1년6개월. 피곤한 하루가 반복되지만 시어머니가 계시니 그나마 복에 겨운 소리란다.

이씨처럼 보육 부담을 떠안은 직장맘들이 신음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연일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보육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보육환경은 매년 개선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은 총 4만2527곳이다. 10년 전 2002년 2만2147곳 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직장맘들을 위해 365일, 24시간 보육서비스를 하는 어린이집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93곳의 어린이집이 24시간 운영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 수준이라면 서울시 내 수요를 커버할 수 있다고 본다"며 "더 확대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절대 부족하고 감독도 허술

하지만 여전히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부족하다는 게 부모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선 신뢰할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전국 어린이집 가운데 국공립은 5%인 2203곳에 불과하다. 단순히 비중만 따져본다면 전체 어린이집 중 1330곳(5%)이 국공립였던 2002년보다 되레 1%P떨어졌다. 정부가 예산 부담이 큰 국공립 어린이집보다는 민간, 직장 어린이집 중심으로 보육 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 대신 믿고 맡길 수 있는 민간 어린이집 육성을 위해 보육시설인증평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관리감독이 허술하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영유아에게 안전하고 질 높은 보육을 제공하기 위해 평가인증지표를 기준으로 어린이집의 현재 수준을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한 후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기관에 대해 국가가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모든 어린이집의 보육 서비스를 점검하지 못한다. 그나마 자발적으로 신청해 평가인증을 받는 곳도 사전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미리 대비하는 곳이 많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의 한 직장맘은 "지난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을 앞두고 수첩에 포스트잇으로 '일주일 동안 오전 9시전에 등원시켜달라'는 메모를 붙여 보냈다"며 "평상시 오전 8시에 등원할 수 있으면 오전 도우미 비용이라도 아낄 수 있는데…"라며 씁쓸해했다. 평가인증 때 현장확인반이 어린이집에 와서 온종일 조사하지만 이같은 편법을 걸러내기 어렵다.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사고가 하루가 멀다고 들리는 것도 평가인증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육시설의 실제 운영시간도 문제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무상보육비를 지원받는 보육기관은 통상 하루 12시간 아이들을 돌보게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씨가 보내는 민간ㆍ가정 어린이집 처럼 종일반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대다수다. 그나마 이들 어린이집 아이들의 하원도 대부분 오후 5시전이면 끝난다. 이같은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년도 정부 성과계획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집 평균 이용시간은 7시간34분으로 보육료 지원 기준시간인 12시간에 못 미쳤다. 그렇다 보니 직장맘, 맞벌이 부부의 양육비 부담도 만만찮다. 지난해 3월부터 만 5세까지 무상보육정책을 전면 실시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맞벌이 부부 대부분은 등ㆍ하원을 맡길 보조 양육자를 이용하고 있다.

◆직장 어린이집은 하늘의 별따기

직장 어린이집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현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직장맘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12년 말 어린이집을 갖춘 직장은 523곳에 그쳤다.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도 2만9881명으로 전체 어린이집 아동 148만7361명의 2%에 불과했다. 2%내 혜택에 들어간 직장맘들의 경우 만족도는 높다. 아이의 등ㆍ하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다 보니 업무 집중도도 높다. 주변에서 로또 당첨과 마찬가지라며 부러워 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직장 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있는 락앤락의 윤모씨는 "보통 오전 8시30분 아이와 함께 출근해 오후 6시40분께 함께 퇴근한다"며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는 직장맘들보다는 조금 편한 편"이라며 말했다.

그러나 직장 어린이집이 설치된 곳조차도 영ㆍ유아를 둔 직원이 윤 씨처럼 직장 어린이집을 활용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 서울 본사 부근에는 어린이집이 설치돼 있지만 도심 외곽 지점에 거주하거나 지방 근무자라면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보육 전쟁이 초등학교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직장맘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어린이집과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회사 생활을 해 온 간호사 김모씨는 올해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정책을 듣고 육아휴직을 고민했지만 결국 퇴사했다. 회사가 육아휴직을 받아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집과는 달리 초등학교 입학 후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도 퇴사의 중요 배경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엄마표 숙제'도 많다. 더욱이 요즘엔 대학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결정된다는 '초4 결정론'이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것도 거슬렸다.

◆보건소 등과 연계하는 소프트웨어 강화

전문가들은 젊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대와 함께 어린이집 실제 운영시간의 현황 파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황현숙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장은 "어린이집에 더 맡기고 싶은데 분위기 때문에 못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실제 이용시간을 조사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어린이집에 현실성 있는 벌칙을 부여하고 종일반 저녁시간까지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 어린이집 확대 조치도 필요하다. 직장 어린이집은 지나치게 높은 민간 보육 비중을 줄일 수 있는 대책 중 하나로 꼽힌다. 직장에서 운영해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직장맘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주의 부담이 만만찮다는 게 직장 어린이집 확대 정책의 장애물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직장어린이집을 단독으로 설치할 경우 시설전환비를 3억원으로, 공동으로 설치하는 경우 6억원 한도로 1억원씩 확대 지원하기로 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주에게만 부담을 주는 직장 어린이집 보다는 지역 사회와 지역 기업이 설치ㆍ운영을 공유하는 협동조합 형태나 산업단지공단 내 공동 어린이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직장 어린이집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는 "보육시설이 직장 내 있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설치하기 쉽지않다"며 "기업주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구성원들과 회사가 십시일반 투자해서 운영하는 식의 현실적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육시설이 완비됐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사회적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테면 직장맘들의 최대 걱정거리 중 하나인 아이가 아플 때나 어린이집, 학교 등의 방학기간 보육 문제 등을 개인에게 한정 짓기보다 사회가 함께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아픈 아이를 위해 보건소 등을 지역 거점으로 한 돌봄교실를 운영하거나 방학기간 돌봄교실 확대 등도 한 방법이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맞벌이 부부가 좀 더 수월하게 직장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 하드웨어인 보육시설 확충과 함께 소프트측면의 지원도 필요하다"며 "자녀가 법정 감염병에 걸렸을 때 유급 휴가를 줄 수 있도록 한 법안 발의에 이어 대체 인력 양성제 등의 법안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보육은 아빠도 한축...탄력 근무제 등 확대해야

이와 함께 보육을 엄마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부부, 사회의 공동 책임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최근 들어 일ㆍ가정양립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양육자는 여전히 엄마, 여자로 한정하고 있다. 직장맘을 늘 배려를 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장맘의 직장 내 지위가 열악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엄마는 물론 아빠도 함께 보육을 책임지는 게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탄력근무제나 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 등도 눈치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박지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단순히 여성 이슈로 접근하면 기업도 부담될 수 있고 역차별 가능성도 있다"며 "기업들도 일하는 부모가 늘고 있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 맞춰 가족친화경영을 '일하는 부모'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20여년 전 아이가 아플 때 응급실서 밤새운 후 도우미에게 부탁하고 출근했던 20여년전 나의 생활과 지금 직장맘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사회 분위기가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보육을 엄마 책임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한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행장은 "양적으로 늘어난 보육시설만으로 보육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도 보육을 특정 한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하기 보다는 함께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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