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옛사람들의 걷기'는 현대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의 근원을 조선시대에서 찾는다. 현대인들의 걷기가 건강과 웰빙, 혹은 힐링과 치유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선조들의 '걷기'는 삶의 뜻을 새기고 걸음마다 깨달음을 구하는 공부의 길이자, 마음을 닦는 수행의 방편이었다. 저자 이상국은 요즘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걷기'에 이렇다할 문화콘텐츠가 없다는 점에 착안, 옛 조상들의 걷기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이야기거리는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와 픽션을 오가는 서술구조다. 저자는 자신의 취재노트를 꺼내들고 1637년 경북 포항 근처 봉계라는 곳을 찾아가 84세의 여헌 장현광 선생을 만난다. 저자는 여헌 선생이 1621년 발표한 경위설(經緯說)에 대해 물어보는데, 여헌 선생에게 "사단은 날줄이며 칠정은 씨줄이다. 그러니 사단만이 선이 아니고 칠정만이 악도 아니며, 씨줄과 날줄이 나눠지고 합해져야 베를 짤 수 있듯이 붕당도 좌우종횡으로 서로 역학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는다. 서울 인사동에서 어우동을 인터뷰한 대목도 재미를 더한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신분제 사회에서 어우동은 "지체 낮은 남자들은 비교적 권력적 망상이 적고 덜 위선적"이라고 평한다.
이 책에서의 '걷기'는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우리가 걷는 '길'의 의미를 "시간이 펼쳐진 공간"이며 "역사 또한 하나의 길"이며 "세상은 길들의 집합이며 세상의 슬픔은 길들이 끊어지며 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옛사람들과 한바탕 길을 걸은 뒤 저자는 말한다. "길이 있는 한 삶이 있다. 길속에 무늬진 옛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지금 걷는 길의 땀내 나는 지문을 탐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옛사람들의 걷기 / 빈섬 이상국 지음 / 산수야 / 1만3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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