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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어머니의 배(腹)와 배(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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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대로씨는 그날 아침부터 기분이 약간 우울했다. 모친으로부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의 건강 염려증이 다시 도졌군"하는 생각에 대답도 건성으로 했다. "아, 네. 그래야죠. 그렇게 하세요. 콜록콜록." 감기 뒤끝에 시작된 잦은 기침까지 멈출 줄 모른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짜증이 제대로 나는 나씨였다. "아니, 팔순 가까운 연세에 무슨 수술을…. 그것도 전신마취를 하셔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하기에도 조심스럽다. 모친은 한번 한다고 하면 해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목 디스크에 허리 수술, 맹장은 물론이고 혈맥류에 축농증까지 여러 차례 몸에 칼을 댔다.

모친 스스로는 자신의 몸을 잘 챙기시는 것이고, 그것이 자식된 입장에선 고맙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충돌이 잦아지니 '병원' 문제로 부부싸움까지 벌어지기 일쑤다. 요는 "어머니는 병원을 너무 좋아한다"는 게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모친이 좀 유난스러운 구석은 있다. 감기 뒤끝에 기침이라도 오래가는가 싶으면 반드시 엑스레이를 찍고, 일 년에 서너 차례 피 검사는 꼭 받아야 한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면 수면불안 클리닉을 다니고, 편두통이라도 오면 MRI라도 찍어야 한다.
그날 저녁 나씨가 퇴근해 신문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모친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아, 예. 어머님.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러게요. 어머님. 근데 배 가르셨다고요?" 간간히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은 모친이 벌써 수술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새를 못 참고 벌써 수술을 하셨구나. 아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씨는 아내를 타박했다. "그래 어느 병원이래? 왜 말씀도 안하시고 수술을 한 거야?"

아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아니 배를 갈랐다며? 얼마나 입원하셔야 된대?" 나씨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아내는 깔깔대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당신 기침한다고 배 갈아서 엿 넣고 고아 놨으니 가져가라는 말씀이셨는데…."

'배 갈았다'는 말을 '배 갈랐다'고 잘못 들은 것이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발음이 시원찮아." 애꿎은 아내에게 소리를 벌컥 지른 나씨는 굳이 소변이 마렵지 않은데도 화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나씨의 눈에선 순간 형광등 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여하(如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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