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체게바라 '의료혁명' 영향..시골마을 구석까지 서비스 전파
여기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2008년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다큐영화 '식코'를 통해서 미국의 의료제도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공적의료보장체계 없이 민영의료보험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국의료제도는 수익성은 훌륭할지 몰라도 서민들은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영화의 압권은 가난하고 병든 미국인 환자들이 쿠바에서 공짜 진료를 받는 장면이다.
국제 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친 쿠바의 의료활동은 베네수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때마침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각종 사회개혁과 더불어 의료분야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2002년 집권층들의 격렬한 반대를 겪는 와중에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시골 지역의 모든 마을에 무상 공공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마을 안으로'라는 듯의 포괄적 보건 의료 정책 '바리오 아덴트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리오 아덴트로'는 공공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이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을 찾아 현지 주민들을 돌보는 정책이다.
처음에는 쿠바에서 지원을 나온 의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뜻을 같이 하는 베네수엘라 의사들도 합류했다. 2003년 시범적으로 카라카스 지역에서 첫 선을 보인 '바리오 아덴트로'가 1년 만에 큰 호응을 얻자 차베스 정권은 점차 공공의료 대상 지역과 규모를 확대한다. 10년 뒤에는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의료 서비스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로 1998년 차베스 취임 초기만 하더라도 2400만 국민 중 의료서비스를 한 번도 받지 못한 국민이 70%이상이었는데, 제도 시행 10년이 지난 현재는 국민의 82%가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게 됐다.
이 책은 저자 스티브 브루워가 2007~2008년 베네수엘라 산간 마을 몬테 카르멜로에 머물면서 그 곳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었던 일들을 담아낸 '취재기'이다. 당초 그는 차베스가 주창한 '볼리바르 혁명'을 취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의료혁명인 '바리오 아덴트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다니는 미국인 학생들이나 베네수엘라 몬테 카르멜로에서 진료를 받는 주민들, 고향을 두고 베네수엘라로 건너온 젊은 쿠바 의사들과의 생생한 대화 내용도 엿볼 수 있다.
이제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의료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모범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다. 인도적 차원의 의료 지원은 사회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폄하됐고, 대가없이 봉사하는 쿠바 의료진들의 활동도 미 언론의 냉대를 받았다. "인구를 모두 합쳐도 3900만명에 불과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는 3억명이 살고 있는 미국보다 많은 8만3000명의 학생들이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또 이 모든 기적이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바리오 아덴트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강력하고 민주적인 참여 의지는 쿠바 의료진이 바리오 아덴트로 시스템을 베네수엘라에 무사히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실험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창조하려고 애쓰는 다른 사회에 큰 영감을 준다."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 / 스티브 브루워 지음 / 추선영 옮김 / 검둥소 출판사 / 1만5000원 >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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