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Book]진주의료원이 베네수엘라에 있었다면...'세상을 뒤집는 의사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쿠바의 체게바라 '의료혁명' 영향..시골마을 구석까지 서비스 전파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로 공공의료기관의 공익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는 의료원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입장과 서민들의 공공의료서비스를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한 달이 넘도록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수익성과 공익성,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의 경우, 이 같은 충돌이 국민의 안녕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2008년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다큐영화 '식코'를 통해서 미국의 의료제도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공적의료보장체계 없이 민영의료보험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국의료제도는 수익성은 훌륭할지 몰라도 서민들은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영화의 압권은 가난하고 병든 미국인 환자들이 쿠바에서 공짜 진료를 받는 장면이다.
신간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은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선보이고 있는 '의료 혁명'을 보여준다. 왜 영화 속 환자들이 쿠바를 찾았는지 이 책을 보면 설명이 된다. 혁명가 이전에 의사였던 체 게바라는 혁명 이후 쿠바에서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을 만드는 등 의학생 육성에 적극 나선다. "돈이 없어 아이를 치료하지 못하는 부모, 끝없는 굶주림과 질병에 이골이 난 나머지 아이가 병들어 죽어도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치부해 버릴 정도로 무감각해진 부모, 바로 이것이 우리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낮은 계층이 일상적으로 겪는 현실"이라는 것을 체 게바라는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체는 의과대학을 만들어 전 세계 의료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봉사 정신 아래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의료교육을 받도록 했다.

국제 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친 쿠바의 의료활동은 베네수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때마침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각종 사회개혁과 더불어 의료분야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2002년 집권층들의 격렬한 반대를 겪는 와중에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시골 지역의 모든 마을에 무상 공공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마을 안으로'라는 듯의 포괄적 보건 의료 정책 '바리오 아덴트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리오 아덴트로'는 공공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이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을 찾아 현지 주민들을 돌보는 정책이다.

처음에는 쿠바에서 지원을 나온 의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뜻을 같이 하는 베네수엘라 의사들도 합류했다. 2003년 시범적으로 카라카스 지역에서 첫 선을 보인 '바리오 아덴트로'가 1년 만에 큰 호응을 얻자 차베스 정권은 점차 공공의료 대상 지역과 규모를 확대한다. 10년 뒤에는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의료 서비스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로 1998년 차베스 취임 초기만 하더라도 2400만 국민 중 의료서비스를 한 번도 받지 못한 국민이 70%이상이었는데, 제도 시행 10년이 지난 현재는 국민의 82%가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게 됐다.
수치로 나타난 성과는 더욱 기적적이다. 1999년 신생아 1000명당 19명이었던 유아사망률은 2008년 13.9명으로 줄었다. 출생 직후 사망률 역시 신생아 1000명당 9.0명에서 4.2명으로 절반이 됐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수명 역시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1.5세 늘었다. 이에 대해 찰스 브릭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바리오 아덴트로를 "의사와 환자, 전문가와 지역사회가 보다 긍정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례"라고 평가한다.

이 책은 저자 스티브 브루워가 2007~2008년 베네수엘라 산간 마을 몬테 카르멜로에 머물면서 그 곳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었던 일들을 담아낸 '취재기'이다. 당초 그는 차베스가 주창한 '볼리바르 혁명'을 취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의료혁명인 '바리오 아덴트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다니는 미국인 학생들이나 베네수엘라 몬테 카르멜로에서 진료를 받는 주민들, 고향을 두고 베네수엘라로 건너온 젊은 쿠바 의사들과의 생생한 대화 내용도 엿볼 수 있다.

이제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의료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모범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다. 인도적 차원의 의료 지원은 사회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폄하됐고, 대가없이 봉사하는 쿠바 의료진들의 활동도 미 언론의 냉대를 받았다. "인구를 모두 합쳐도 3900만명에 불과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는 3억명이 살고 있는 미국보다 많은 8만3000명의 학생들이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또 이 모든 기적이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바리오 아덴트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강력하고 민주적인 참여 의지는 쿠바 의료진이 바리오 아덴트로 시스템을 베네수엘라에 무사히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실험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창조하려고 애쓰는 다른 사회에 큰 영감을 준다."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 / 스티브 브루워 지음 / 추선영 옮김 / 검둥소 출판사 / 1만5000원 >




조민서 기자 summe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바보들과 뉴진스' 라임 맞춘 힙합 티셔츠 등장 어른들 싸움에도 대박 터진 뉴진스…신곡 '버블검' 500만뷰 돌파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국내이슈

  • 머스크 베이징 찾자마자…테슬라, 中데이터 안전검사 통과 [포토]美 브레이킹 배틀에 등장한 '삼성 갤럭시' "딸 사랑했다"…14년간 이어진 부친과의 법정분쟁 드디어 끝낸 브리트니

    #해외이슈

  • 이재용 회장, 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논의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 '벌써 여름?'

    #포토PICK

  • 기아 EV9, 세계 3대 디자인상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