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휘태커 소더비 디렉터 "아시아미술 급성장 속 한국작가 저평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아시아 지역의 미술품 구매력은 날로 커지고 있고 한국 작가들 중에는 뛰어난 재능을 뽐내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한국은 아직까지는 세계미술시장에서 가격이나 정보 면에서 투명하지 못하다는 편견이 있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소더비(Sotheby's)가 운영하는 국제미술전문 교육기관인 소더비 인스티튜트 디렉터 필 휘태커(Phil Whittaker·사진)의 말이다. 휘태커는 중국을 선두로 한 아시아 미술 시장의 급성장에 비해 한국 작가들의 재능이 저평가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이처럼 표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동국대학교 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휘태커의 '세계미술시장 동향과 미술세계 내 직업 트렌드'를 주제로 한 특강이 열렸다. 강연장은 미술품 컬렉터, 작가, 미술시장 전문가, 미술 전공자 등 특강을 듣기위해 모여든 인파들로 빼곡했다.
휘태커는 최근 아시아 미술시장의 주요 트렌드를 설명하며 "중국작가의 작품 판매가 외국 작가보다는 반복적으로 이뤄지는데 사고파는 행위가 빈번하다"며 "고가 작품 위주로 아시아 컬렉터들의 구매가 많은 점도 같은 맥락인데 이는 소장보다는 투자목적으로 미술품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국가 대 비 아시아국가 미술품 구매경향을 보면, 500만원 이하에 낙찰된 경우가 비 아시아 국가에서는 75.3%나 차지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런 구매가 38.4%에 불과하다. 더불어 아시아 미술시장 규모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지난 2011년의 경우 작가매출 기준으로 세계 상위 10위에 5명의 중국화가가 올랐다. 전통적으로는 피카소나 앤디워홀 같은 작가가 1,2위를 다퉜다면 최근에는 장 다쳰, 치바이스 등 중국작가들끼리 1,2위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휘태커는 한국의 미술이 아직은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이유로 "한국 작가들은 재능이 좋지만 사실 한국은 여전히 세계미술시장에서 인식이 좋지 않다"며 "이런 인식은 미술계 내 갤러리, 미술관 등이 같은 사람의 소유로 돼 수직통합적인 구조로 이뤄진 면이 있어 시장이 투명하지 못하고 갤러리나 경매에서 진행된 낙찰기록이나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현대미술품 구매에 있어 사이즈와 경매장의 위치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련 사례로 김동유, 이환권, 홍경택 등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제시됐다. 김동유 작가의 '마릴린 먼로 vs 마오주석'은 지난 2008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5억원에 낙찰됐지만, 1년 뒤 비슷한 작품이 보로부두르 싱가포르 경매에서 6500만원으로 낙찰됐다. 이는 작품 크기가 4배 이상 차이가 나면서 가격대도 그만큼 달라지게 된 것. 더불어 이환권 작가의 조각 작품인 '바람부는 날'은 2010년에는 라라사티 홍콩 옥션에서 8000만원 정도 낙찰된 바 있지만, 경매 시기와 경매장마다 아예 팔리지 않거나 2000만~8000만원대로 낙찰가가 다양하다. 그는 "대부분 생존 작가의 작품인 현대미술품은 어느 지역, 어느 경매장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각 국가, 지역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작품이더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거나 비싸게 팔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휘태커는 미술 전공자들에게 유용한 미술관련 직업에 대한 정보도 제시했다.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집계한 미술 전공자들의 주요 직업 목표에 따르면 31%가 화랑인 '상업갤러리', 23%는 아트딜러 또는 큐레이터, 20%는 경매회사, 17.5%는 독립적인 문화예술사업, 16%는 미술관 또는 관련 비영리단체에 취업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갤러리스트'란 직업이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부분은 1%에 지나지 않는다. 전시 기획부터, 설치, 행정, 자금조달, 재무경영 등 업무를 모두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며 "더욱이 미술세계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가장 비밀스러운 점은 바로 '미술품을 파는 것'이다. 대화의 중심은 '돈'에 집중돼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작품을 판매해야 하는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리학 박사이기도 한 휘태커는 영국의 여러 MBA 과정 교수와 소더비 인스티튜트 싱가포르 디렉터를 거쳐, 소더비 인스티튜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소더비 인스티튜트는 런던, 뉴욕, 싱가포르에 센터가 있으며 졸업생들은 세계 각국에서 큐레이터·아트딜러·아트컨설턴트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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