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지은 아파트 탓인데" … 윗집사는 죄인 신세
주말엔 아이들 데리고 피신 … 주기적으로 선물 공세까지


"100만원 짜리 방음매트 깔아도" … 엄마들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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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 네살, 일곱살 두 아들을 둔 강석진(37·서울 가양동)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내집 장만을 했지만 하루도 마음 편히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13층으로 이사한 날 저녁부터 아랫집 남자가 "시끄럽다"며 항의하더니 이튿날부터 밤마다 거실이나 욕실 천장을 쾅쾅 울려대기 일쑤였다. 당황한 강씨가 거실은 물론 방과 부엌 통로까지 모두 두꺼운 소음방지 매트를 깔고 아이들이 집에서 뛰지 않도록 단속했지만 아랫집의 만행은 그칠 줄 몰랐다. 한밤중에 방치로 벽을 치는 소리는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려 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가만 보니 강씨의 집에서도 윗집이나 옆집의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소리, 그릇을 달그닥거리는 소리, 화장실을 사용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걸 보아 90년대 초반에 지은 낡은 주공아파트의 문제였다. 강씨는 "낮에는 두 아이 모두 유치원에 가고, 저녁에는 8시 반이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게 하는데 아랫집에서는 모든 소음이 우리집에서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요즘 같은 때 무슨 일이라도 날까 무서워 따지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하는 수 없이 강씨는 토요일 아침이면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근처 본가로, 처가집으로 떠돌다 월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생활을 몇달째 계속하고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둘째 아들은 엄마, 아빠 눈치를 보며 묻는다. "아빠, 지금 아랫집 아저씨 집에 있을까?"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아이를 키우는 집마다 비상이 걸렸다. 한창 몸 움직임이 많은 유아나 유치원생들은 아무리 주의를 줘도 통제가 쉽지 않는데,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으로 살인이나 방화와 같은 흉악범죄마저 잇따르자 불안감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실정이다.


◆ "이웃간 싸움 날라" 매트는 기본, 바닥공사까지… =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체의 71%(2010년 기준).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지난해 3월부터 12월 사이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과 관련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전체 민원의 73.1%(1338건)가 아이들이 뛰거나 쿵쾅거리며 걸을 때 나는 소음 문제였다.


주부 이모(32·용인 풍덕천동)씨는 다섯살 아들 때문에 집안에 방음 효과가 뛰어나다는 놀이매트를 깔았다. 92㎡(28평) 아파트에 매트 비용만 99만8000원이 들었다. 2.5㎝ 두께의 매트 때문에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몸을 지지는 즐거움을 포기한지는 오래. 청소 한번 할 때마다 매트를 일일이 들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아이 친구가 놀러오고 싶다고 해도 절대 못오게 하고, 자칫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바퀴달린 장난감도 모두 치워버렸다. 이씨는 "보름에 한번 꼴로 케이크며 과일박스를 들이밀며 아랫집에 인사치레를 하지만 노부부의 표정은 늘 떨떠름하다"고 말했다.


네살과 여섯살 짜리 남매를 키우는 김모(38·서울 개봉동)씨는 올 겨울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놀이터에서 살다시피했다. 지난해 여름 아랫집에 이사 온 20대 청년이 도무지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며 몇차례 올라와 눈을 부라리고 간 탓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청년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취업준비생인데……"라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김씨는 "겨울엔 밖에서 뛰놀게 할 수도 없어 두 아이를 데리고 근처 키즈카페며, 실내놀이터 안가본 곳이 없는데, 한번 나가면 입장료에 아이들 간식비까지 돈 4만~5만원은 우습게 깨진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남의 집 자식이지만 제발 꼭 취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전엔 비인기층으로 분류되던 아파트 1층이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마포 공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층간소음 문제가 심하다 보니 아예 1층을 구해달라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며 "집을 사서 이사하는 경우엔 1000만원 이상을 들여 방음공사를 하거나 마룻바닥을 푹신한 재질로 바꾸기도 한다"고 전했다.


건축자재 전문기업 관계자는 "층간소음 방지용 PVC 바닥재 상품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최악의 주택경기 부진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갔다"며 "기존 노후된 아파트에 적용할 수 있는 방음 바닥재가 앞으로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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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면 안돼!" 잔소리에 아이도 스트레스 = 부모들은 한창 활동량이 많은 7세 미만의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음매트를 깔아도 발소리 정도가 작아질 뿐 소음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병원이나 학원 등 생활편의시설이 가까이 있어 아이 키우기에 좋다고 해 아파트 단지를 택했는데, 어느 날 내가 층간소음의 가해자이자 또다른 피해자가 돼 있었다"며 억울해 했다.


이씨는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단지 윗층에 산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터폰만 울리면 잔뜩 겁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생활소음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면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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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파트는 공동체 공간이고 서로가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교육할 필요는 있다"며 "다만 이것이 교육적 측면에서 이뤄져야 하지 아이들의 행동을 억제시키는 개념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엄마들이 층간소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과도하게 감정을 실어 훈육하거나 체벌하면 아이는 심리적 상처를 입고 심할 경우 강박증세를 보일 수 있다"며 "뛰는 놀이는 밖에서 해야 한다든지, 밤 8시 이후에는 뛰면 안된다는 등의 규칙을 정해 아이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인경 기자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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