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은퇴 뒤에도 저임금 노동 인구 증가
#일본 도쿄의 한 산업용 가스회사에서 일하다 3년 전 은퇴한 미시마 히로부미씨는 은퇴 뒤 6개월만에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도쿄 구직센터에서 채용 공고를 샅샅이 훑어본 덕이다. 버스 가스 충전을 감독하는 일로 새벽 4시에 출근해야 한다. 연봉은 퇴직 직전 받은 7만7000달러(약 8716만4000원)의 33%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정규직으로 계속 남아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최근 미국에 '회색천장(gray ceil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베이비 붐으로 상징되는 기성 세대가 은퇴하지 않고 계속 일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취업이나 승진 기회가 제한되고 있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2010년 1월 이후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 가운데 70%가 55세 이상 구직자들에게 돌아갔다고 3일(현지시간) 소개했다. 경기침체 이후 고령자의 취업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기업들의 정년은 60세다. 하지만 65세가 넘어서도 일하는 노인이 많다. 일본 통계청에 따르면 현지 고령 인구의 25%가 취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이 지난 뒤에도 일하는 것은 경제적 사정 때문 혹은 소일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노인들이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유사하다. 하지만 고령인구의 일자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각기 다르다.
미국의 경우 은퇴 뒤에도 노인들이 계속 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사정이다. 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했다 낭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계속 일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인들의 보유 자산 가치가 급감한 것도 은퇴를 미루는 주요 원인이다.
고용주에게는 노인을 젊은이보다 싸게 고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일부 전문 직종의 경우 노인들이 많이 취업한다. 그러나 노인들은 대개 가게 점원이나 건물 관리인 같은 저임금 직종에서 근무한다.
한편 일본의 경우 국가가 노인들의 일자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공공부채 규모는 11조5000억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더욱이 일본인들의 기대수명은 83세다. 최장수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출산율은 1.4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노인 복지비용이 폭증하고 있다. 이는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의회는 정년을 내년 61세, 2025년 65세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물론 복지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업들에는 근로자가 정년을 넘겨서도 일하고 싶어한다면 계속 일하도록 배려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신 임금을 대폭 깎는 조건이다.
한편 독일에서는 연금개혁으로 연금 수령 규모가 줄자 아르바이트하는 노인이 늘었다. 노인 대다수는 월수입 400유로(약 56만9260원) 미만의 잡일에 종사한다. 젊은이들이 꺼리는 분야에서 노인들이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가난한 노인들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비판도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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