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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윤증현의 여의도 일격 "이래선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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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망국…이게 나라인가, 빚내는 복지 안된다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아주 답답한 노릇이지. 도대체 그 사람들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야?"

15일 오후. 여의도 尹경제연구소에서 만난 윤증현 전(前) 기획재정부 장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 문을 열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마뜩지 않다고 했다.
퇴임 후 8개월. 연구소 개소를 알리기 전 지인들을 초대한 자리에서도 현안 얘긴 일절 삼가던 그다. "칭찬도 조언도 후배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던 노장을 다시 논쟁 속으로 불러들인 건 '막 나가는 여의도'였다. 인터뷰는 1시간 동안 쉼 없이 진행됐다.

-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공언했습니다.
"황당한 얘기지. 세계 어느 나라가 국가간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답디까? 그런 나라는 국제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해요. 더구나 통상으로 먹고 사는 우리가, 거대 시장을 열어준다는 데 마다할 게 뭐야. 한미FTA를 한다고 하니 일본, 중국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겁니다. 이 거대한 조류에서 밀려날까봐. 왜 그걸 몰라.

지금 한미FTA에 반대하는 분들은 협상을 진행한 전 정부에서 총리, 장관하신 분들입니다.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그 때와 지금 협상의 내용이 달라졌으니 관두자? 답답한 노릇이야. 그 사람들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야? 재협상 했다지만, 큰 틀에선 바뀐 게 없어요. 자동차를 양보해 손해라면 자동차 업계가 반대해야 맞는데 대환영이라 이거지. 겉으로 양보한 것 같아도 손해 안 본다는 뜻이에요. 수입차 시장 상황을 좀 보고 얘기합시다.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차가 얼마나 팔리는지를 봐요. 그리고 미국에서 우리가 차를 얼마나 팔고 있는지 따져보라고."
- 경쟁적인 복지 공약도 쏟아지고 있는데요.
"복지는 장기적으로 확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수요가 점점 늘어날테니까요. 하지만 '보편적 복지'는 사회주의적 이상일 뿐입니다. 복지 하자면서 돈이 어디서 나올지 정확하게 계산해 알려주는 정치인을 나는 못 봤습니다. 복지는 한 번 시작하면 절대 중단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퍼주기 복지를 하려면 방법이 뭐가 있어. 세금 많이 걷거나 빚을 내야 하는데 둘 다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빚을 내 복지하면 결국 자식들에게 빚을 떠안기는 건데 세상에 이런 무책임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 야당과 여당의 복지 공약이 엇비슷해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리더십의 실종이지. 표를 얻어야 하는 야권에선 '센 얘기'들을 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여당은 뭐야? 여당의 역할이 실종됐어요. 요새 복지 공약을 보면 공짜점심을 넘어서 공짜아침까지 주자고 그러대. 공약만 보면 여야가 합당을 해야 할 수준이에요. 하기사 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마당이니 정책의 중심을 잡을 '진짜 여당' 노릇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소. 그런데 이러면 안되지. 시대정신을 얘기하고, 나라의 비전을 보여줘야 할 정치권이 이래선 안되지."

-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복지 홍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장차관들을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글쎄. 할 말들은 하고 있다고 보는데… 아마 억울한 측면이 있을거야. 지금 정부 부처가 얘기한다고 말 발이 먹히나, 이미 공이 여의도로 넘어가 있는 상황인데. 물론 그렇더라도 손을 놔선 안됩니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 위에 먼지가 쌓여가는 데 국회에 제출했으니 나는 할 일 다했다? 아니야, 목소리를 내야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광의의 정부'가 돌아가야 합니다. 과천과 세종로 뿐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나라가 큽니다. 그런데 그런 리더십이 보이질 않습니다.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에요.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국제 사회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요. 절대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원이 많은 중국이나 브라질처럼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없습니다. 요즘 여의도 상황을 보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의 국운(國運)이 다한 건 아닌가 참 두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 정치권의 복지 경쟁을 유도한 건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아닐까요.
"그런 측면도 있지요. 하지만 청년표를 얻으려고 복지 공약을 쏟아내면서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그게 결국 당신들이 갚아야 될 빚이라는 걸 숨기는 건 좋은 리더십이 아닙니다. 정부에 등을 돌렸다면 소통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게 맞습니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지적들을 수용해 반성하고 고쳐야지요. 나도 이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밖에서 알아주는 것만큼 안에선 좋은 점수를 못 받으니 서운한 점도 있고, 한편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 높은 물가와 청년 실업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만이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퇴임할 때도 말했지만,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부분입니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해요. 이걸 해결하자면 대학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합니다. 80%에 이르는 대학진학률을 떨어뜨려야 해요. 국민의 정부 당시 대학설립 자유화로 전국에 우후죽순 대학이 생겼어요. 430여개 된다지요? 전국 시·군·구가 210곳 남짓이니 시·군·구별로 한 개 이상의 대학이 있는 꼴이에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대학가서 공부할 사람은 공부를 하고, 굳이 대학 가지 않고 기술을 배워도 괜찮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세상이 돼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확 푸는 것도 대안입니다. 영리병원 왜 못하게 합니까? 대학병원에 가봐요.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를 봅니다. 수술 대기자가 넘쳐납니다. 산업화를 도입해 민간 자본이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경쟁을 통해 의료 수준을 확 높이면 존스홉킨스 병원 못잖은 세계 유수 병원 열 군데도 만들 수 있습니다. 종합병원 하나가 만들어 내는 일자리가 5000개입니다.

교육 시장도 열어야 해요. 왜 비싼 돈 써가며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를 만듭니까. 재임당시 인천 송도에 국제학교가 개교해 가봤는데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겠더라고. 거기 교장이 그러더군요. 이 학교가 잘되면 일본, 중국에서도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우리가 서비스 산업을 잘 키우면 수출과 내수의 확대 균형을 이루면서 일자리 문제, 저성장 문제를 함께 풀 수 있습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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