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만 해도 유럽 부채위기가 지금처럼 확산되리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던듯 하다. 2010년 하반기 글로벌 증시는 강한 랠리를 보였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유로·달러 환율이 유로당 1.50달러 가까이 회복됐다. 그러나 시장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듯 하다.
외신들은 새해에 접어들면서 약속이라도 한듯 유로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유럽에서는 최근 유로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모습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으며 유럽 또는 유로존이 현재 형태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고들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4월22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유로 포기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국민전선 마린 르 펜 후보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0일 르펜이 사르코지 대통령을 바짝 따라잡았다(Le Pen snaps at Sarkozy's heels)며 르 펜이 21%, 사르코지가 23%의 지지율을 획득한 한 여론조사 내용을 공개했다.
이탈리아 현지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최근 55%의 이탈리아인이 유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으로 나타난 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탈리아인 중 60%는 이탈리아가 유로에 가입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답했지만 65%는 유로를 도입한 것이 이탈리아 경제에 오히려 해가 됐다고 답했다. 심지어 31%의 이탈리아인들은 리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유럽연합(EU)에 대한 신뢰도도 51%에 불과했다.
연초 대규모 증자 계획을 공개한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증자 관련 투자설명서에서 투자 위험 요인으로 유로존 부채위기가 악화될 수 있으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국가가 자국 통화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독일에서도 지난달 초 한 여론조사에서 독일인 3명 중 1명은 유로가 강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로존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가 된 그리스 국민들은 오히려 유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연말 한 여론조사에서 그리스 국민들 80%가 유로 탈퇴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독일 집권 연정을 이끌고 있는 기독민주당의 마이클 훅스 원내 부대표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훅스는 그리스가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를 도입해 평가절하를 하는 수 밖에 없다며 유로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느냐 여부는 이미 문제가 아니라며 그리스는 부채를 결코 상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독일 기독사회통합당도 필요한 개혁 조치를 취하기를 거부하거나 할 수 없는 국가들에게는 유로존에서 빠질 기회를 줘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로얄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필립 햄턴 회장은 작은 하나의 국가가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고 말해 그리스의 이탈 가능성을 암시했다. 향후 10년 내 유로가 붕괴될 확률이 99%라고 보고 있는 영국의 싱크탱크인 경제경영연구센터(CEBR)의 더글라스 맥윌리엄스 소장도 "그리스는 유로존을 떠날 것이 확실해 보이며 이탈리아도 남기보다는 떠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닥터 둠' 마크 파버도 지난 20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취약한 유럽 국가들이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최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경제 포럼에서 "지금 이코노미스트들은 유로가 붕괴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붕괴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며 유로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이 2008년 이후 계속 40%를 웃돌고 있음을 지적하며 시민 봉기가 유로 시대를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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