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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프로 이상을 밟은 순수 아마추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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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9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올드 팬들에게 특별한 대회로 기억된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 자유중국(대만) 등 기존 출전국 외에 호주가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대회 1차 리그에서 한국은 호주에 4-5, 일본에 2-3으로 지는 등 1승1무2패를 거둬 사실상 우승이 좌절됐다. 그러나 2차 리그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은 필리핀을 5-2, 자유중국을 9-1, 호주를 4-0으로 연파하고 1, 2차 리그 합계 4승1무2패로 5승2패의 선두 일본에 반 경기차로 따라붙었다.
대회 마지막 날 기적은 또 한 번 벌어졌다. 한국은 박영길과 강병철의 솔로 홈런 등 장단 10안타로 일본을 8-3으로 크게 물리치고 1963년 서울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마운드에서는 왼손잡이 윤동복이 5이닝 2안타 무실점, 재일동포 김호중이 4이닝 5안타 3실점하며 한국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원로 야구인들은 이 대회 우승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일본-호주, 일본-자유중국 경기에 주심을 맡은 한국 심판의 이른바 '애국 판정'으로 일본이 0-2, 2-3으로 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주심의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편파적이었다고 대회 본부에 항의했다.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글쓴이에게 이 대회는 이런 우승 과정 말고 또 다른 기억으로 추억된다. 한국-필리핀, 호주-자유중국의 1차 리그 경기가 열린 대회 첫날. 서울운동장 입구에서 구매한 대회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오래전 일이어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호주 선수의 직업이 'butcher'(정육점 주인)였다. 영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를 야구 대회 프로그램에서 보게 돼 신기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무렵 아시아권 타자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오픈스탠스를 호주 선수 가운데 몇몇이 취했던 장면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젠 6개 구단으로 이뤄진 프로 리그 ABL(Australian Baseball League)이 열리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호주 야구는 순수 아마추어였다. 한국 선수들의 직업도 은행원(한일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농협), 군인(육군 해병대) 등으로 돼 있어 아마추어인 듯 했지만 실제로는 프로 선수나 다름없었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관련한 재미있는 뒷얘기가 들려왔다. 대회 마지막 날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케냐의 아벨 키루이가 우승 포상으로 세 계급 특진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2009년 베를린 대회 우승자인 키루이는 이번 대회에서 2시간7분38초의 기록으로 1위로 골인해 1997년 아테네 대회와 1999년 세비야 대회의 아벨 안톤(스페인) 등에 이어 3번째로 대회 2연속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케냐 경찰에서 한국의 경사 계급에 해당했던 키루이는 세계선수권대회 2연속 우승으로 세 계급 특진 혜택을 받아 지역 경찰에서 고위 직급인 경정이 됐다고 한다. 29살에 군인으로 치면 고위 영관급 장교가 된 것이다. 키루이의 소감 또한 흥미롭다.

"내 승리를 인정해 줘 고맙고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케냐를 위해 달리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키루이는 케냐 경찰이 주최한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해 경찰관으로 채용되면서 정식으로 달리기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1960년 로마 대회와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올림픽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2연속 우승하며 아프리카 마라톤의 출현을 알린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다.

그는 하이레 셀라시에 황제 근위대 소속 군인이었다. 로마 올림픽 전 부사관이었던 비킬라는 두 차례나 조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며 대위까지 승진했다. 마라톤을 그만둔 뒤 운전 부주의로 하반신 불수가 됐지만 양궁을 익혀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하는 등 스포츠와 인연을 이어나갔다. 비킬라에게 에티오피아 정부는 4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대위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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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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