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얼마 전〈공짜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초대권을 당연시 여기는 관람 태도에 대한 생각을 얘기했었다. 골프장 갈 때, 주문한 책 배달될 때, 구운 등심을 먹을 때 이상으로 공연장 가는 길을 제일 좋아하는 기자는 틈만나면 공연장 매너에 대해 떠들어왔다.

그랬던 기자가 공연장에서 대참사를 일으켰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몰상식한 여자라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그 원흉은 바로 핸드폰 벨소리.


8월 1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중동국가 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봉을 응시하고 있다.


공연 후 청중에게 인사하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단원들. 기립박수로 답하는 청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연 후 청중에게 인사하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단원들. 기립박수로 답하는 청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들은 8월 14일까지 예술의 전당을 베토벤 교향곡으로 물들인다. 나흘 동안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마치면 15일에 임진각 평화 누리 공원으로 무대를 옮긴다.


객석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기자는 공연장에서 멀지 않은 좋은 자리에 앉아 마지막 점검을 했다. “오늘은 어쩐 일로 핸드폰 끄라는 안내 방송이 없네. 아예 핸드폰 꺼두자. 진동으로 해도 방해될 때가 있거든.” 동행한 친구도 핸드폰을 만졌다.


순간, 막막했다. 일주일 전 교체한 스마트 폰은 내 조작을 거부했다. 진동 혹은 소리 전환은 쉽더니만 완전히 전원을 끄는 기능은 찾아낼 수 없었다. 급하면 배터리를 분리하던 예전 것과는 너무 달랐다. 겨우 ‘무음’을 찾아 다행스럽게 세팅을 마쳤다.


지휘봉의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객석도 숨소리를 삼켰다. 순간, 공기를 타고 흐르는 핸드폰 벨소리.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그 소리로 인해 대다수의 청중은 다시 한 번 핸드폰을 체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이 움직이기 전이었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다니엘 바렌보임은 오른쪽 귀에 손을 대는 제스처를 보이며 그 순간을 포용했다.


내 가방에서 시작된 핸드폰 벨소리
공연장 평화를 조각냈다

지휘자의 손끝은 음악과 청중을 하나로 엮기 시작했고 연주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순간 포탄이 터졌다. 기자 가방의 핸드폰은 요란한 벨소리를 내며 연기 없이 공연장의 평화를 조각냈다. 핸드폰 조작에 미숙했던 나는 ‘무음’이 아닌 ’벨소리’를 선택했던 것이다. 시작된 공연은 계속 진행됐다.



공연 중에는 핸드폰 벨소리 외에도 불빛, 진동음도 연주자를 방해한다.

공연 중에는 핸드폰 벨소리 외에도 불빛, 진동음도 연주자를 방해한다.

원본보기 아이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 얘기가 생각난다. “전엔 악장 사이에 박수치는 관객이 많았어요. 젊을 때는 그게 너무 싫어서 관객을 노려보며 화를 냈어요.
요즘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여유가 생긴거죠. 전보다 악장 사이에 박수치는 분이 줄기도 했구요. 대신 핸드폰 소음이 많아졌어요.”



만일, 다니엘 바렌보임이 청년이던 시절에 오늘 같은 비극을 마주했다면 뒤돌아서서 나를 노려보거나 ‘나가시오’라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큰 사고를 치고 나니 도통 연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청중이나 연주자들이 “당신 때문에 공연 관람을 방해받았으니, 연주를 망쳤으니 위자료를 내시오’라며 청구서를 받는 상상에 이르니 집에 가고 싶었다.


어느 공연에선가 공연 중에 통화하던 사람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그 사람 들으라고 ‘그렇게 급한 일이 있으면 공연장 오지 마세요’라고 쏘아붙이던 기자의 공연 생활에 치유하기 힘든 흠집을 입은 후유증.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자로 인해 불쾌한 기억을 갖게 된 이들에게 어떻게 사과할 수 있을까?

AD

다니엘 바렌보임은 오늘도 그 시간에 지휘석에 선다. 어제와 같은 제스처를 보여주지 않기를, 그저 평화로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지선 기자 sun0727@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