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선칼럼]'레임덕' 대통령의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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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핵인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집권 후반기면 어김없이 맞게 되는 권력누수 현상, '레임덕(Lame Duck)'이다. 지난 1988년 이후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레임덕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숙명처럼 레임덕은 대통령을 쫓아다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인 1991년 초 서울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비리가 터진 뒤 힘을 잃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4년차에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흔들리더니 5년차에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비리 사건으로 권력 기반이 허물어져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2001년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면서 레임덕에 시달렸다.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의 금품수수 비리는 결정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른 3년차인 2005년에 터진 러시아 유전 개발 및 행담도 게이트와 그 이듬해 '5ㆍ31 지방선거' 패배로 기반이 급격하게 약화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도 예사롭지 않지만 올 들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사퇴 파동, '4ㆍ27 재보선' 패배,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싼 민심 이반 등은 확실한 레임덕의 징후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단이 이 대통령의 정책에 드러내놓고 반기를 든 것은 레임덕이 깊어지는 수순이며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중 장관들이 대거 불참하거나 지각해 국무회의가 늦게 열린 것은 레임덕의 상징적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은 레임덕을 더욱 가속화할 위험 요인이다. 금융감독원, 국세청, 감사원 등 국가 중요 기관은 물론 이 대통령의 대선 공신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연루 사실이 드러나는 등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흐름이 결코 이 대통령에게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레임덕을 피할 길은 없는가. 역대 정권이 레임덕에 빠져든 직접적 도화선은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였다. 권력의 부패가 경계 대상 1호인 것이다. 차기 정권 창출을 둘러싼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다툼도 한 요인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원하지만 미래 권력과 그 추종자들은 레임덕을 이용하려 할 뿐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노태우와 김영삼, 김영삼과 이회창, 노무현과 정동영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뭐라 해도 민심이 정권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국정의 추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미래 권력과 추종자들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민심이 대통령을 떠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심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면 '표' 계산에 누구보다 밝은 그들은 결코 대통령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민심을 얻는 것이 레임덕을 피해 갈 가장 좋은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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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할 일은 정해진 셈이나 같다. 5% 성장 욕심을 버리고 물가 안정과 청년 실업, 전월세 대란, 깊어지는 양극화 해소 등 민생 경제를 살려 민심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할 일이라는 얘기다. 인사를 바로 하고 측근들의 발호를 경계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레임덕을 억지로 막겠다고 힘에 부치는 일들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 여당의 대권 후보로 자신이 선호하는 인물이 아니라 당원과 국민이 지지하는 인물을 밀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27일 '5ㆍ6 개각'으로 이임하는 장관들과의 만찬에서 "행복한 퇴임을 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뿐 아니라 국정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길 빈다. 진심으로.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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