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본..외국 기업·자금 이탈 가속
[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이의원 기자]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경제가 대지진까지 겪으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지진으로 기업과 투자금의 일본 탈출이 빨라지고 있으며, 일본의 공급망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안팎의 기업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정치권은 원전 비상시국 수습을 하는 간 나오토 총리를 돕기는 커녕 원전대응 미흡을 이유로 내각 불신임안 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재난이 겹쳐 오는 '화불단행'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장기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기업·투자금 탈일본 가속=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월11일 대지진 여파로 외국계 기업 및 자금의 일본 탈출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30일 보도했다.
일본의 어두운 경제 전망과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대지진 발생 전부터 이미 외국계 기업들의 일본 탈출이 진행됐으며 외국계 은행들이 홍콩과 싱가포르로 빠져나가면서 도쿄의 아시아 금융허브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결정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는 법인세 인하 계획을 연기하기로 했으며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여부에 대한 결정도 미뤘다. 이처럼 규제 완화가 지연되면서 외국계 기업들의 일본탈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경제 재건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금과 인재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JP모건의 간노 마사아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해외 기업들의 일본 시장 진입 및 투자 장벽을 낮추기 위해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5년 전 FDI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FDI는 GDP 대비 3.8%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씨티그룹의 브라이언 맥카핀 글로벌시장 대표는 “대지진은 FDI를 늘리는 촉매가 아닌 일본 기업들의 해외 투자를 부추기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사이토 아쓰시 사장은 “FDI 없이는 적정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 없이 일본의 금융시장과 기업이 안정될 수 없음을 빨리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들에게 법인세 인하 등 세금 우대 혜택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의 사이토 다케시 일본기업투자부문 대표는 “일본 정부가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이겠다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외국계 기업 우대 구역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위기 지속으로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의 브라이언 샐즈버그 소매부분 대표는 “원전 상황이 불투명하게 지속되면서 글로벌 인재들이 일본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공급망 비중 높지않다"= 대지진 이후 글로벌 첨단 부품 공장인 일본의 공급망 붕괴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 예상했던 글로벌 공급망이 예상을 깨고 원활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본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예상밖으로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는 하우리교수와 리서치회사 가트너의 케빈 오마라 공급망 전문가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일본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낮다고 보도했다.
750개 공급망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일본 대지진 발생전인 지난 2월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계 3대 경제국가임에도 일본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응답자 중 37%는 중국을 1위로 꼽았고 20%가 미국을 지목했다. 이어 7%는 독일이었고 일본은 캐나다와 함께 8위를 기록했다.
오마라 전문가는 "보고서에서 눈에 띌만한 점은 일본이 상대적으로 공급망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적다는 것"이라면서 "기대한 것보다 일본은 세계 제조업 공급망에 덜 통합돼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본이 지진 직후 시장이 우려했던 것만큼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NYT는 잘 짜여진 글로벌 공급망과 기업들의 발빠른 조치 덕분에 글로벌 공급망이 일본 지진이라는 위기를 잘 견뎌냈으며, 공급망 붕괴에 제한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망관리(SCM) 전문가인 하우리 스탠포드대학교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은 일본 지진이라는 폭풍우를 잘 견뎌내고 있다"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대부분 사람들이 지진 초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흔들리는 간 내각=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미흡한 대응을 보이면서 간 나오토 총리가 취임 1년을 며칠 앞두고 내각 불신임안에 직면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과 공민당 등 일본 야권은 내각 불신임안을 다음달 22일 회기 종료 전까지 중의원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야권은 이르면 다음달 3일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할 전망이다.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총재는 27일 밤 당 간부회의에서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간 정권은 야권이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해도 300명이 넘는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무산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민주당 내 야권 동조세력을 찾아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야권은 민주당 내에서 중의원 81명이 내각불신임결의안에 찬성하면 가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간 총리는 내각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될 경우 퇴진하는 대신 중의원 해산과 총선으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간 총리는 G8 정상회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을 포함해 각당 대표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다.
이의원 기자 2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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