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윽박,머뭇, 떠넘기기" 정부가 禍 더 키운다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글로벌 경제위기를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극복했고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로 국격제고의 호기를 맞았다고 호들갑 떨던 정부가 새해들어 이어지는 물가폭등과 전세대란, 전력난, 구제역및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 등의 갖은 악재를 두고 정책실기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시장과 국민에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물가, 전세, 전력 모두 사전에 예상가능했던 변수였으나 재탕 삼탕 대책에 책임 전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구제역 파동은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서 화(禍)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금리인상 주저하더니 공무원 봉급 5%올리고 물가는 내려라=지난해 수출과 무역흑자가 사상최대를 기록하면서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글로벌경제위기를 회복했다. 외화가 대거 유입되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자연히 물가가 상승한다. 특히 미국이 달러를 대량 살포하면서 원유 등 국제 원자재시장에 투기성 자금도 몰리면서 원자재값이 뛰기 시작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거둬들이고 인플레이션 심리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을 예고하던 시그널(신호)까지 주던 한국은행 총재는 끝까지 동결카드를 쥐었다가 근 1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1월에 금리인상을 했다. 그 사이 물가는 이미 지붕뚫고 하이킥 상황을 연출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내놓았던 물가대책이 지난 1월 13일 종합선물세트 형식으로 나왔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2년간 동결해온 공무원 봉급을 5%를 올리면서 물가 3%를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믿을 국민은 없었다. 실제로 한은은 내부적으로 올 1·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상반기는 평균 3.7%였다. 이는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평균 87달러일 것이라는 전제를 배경으로 나온 수치나 이미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기준 90달러를 넘어섰다. 원유, 금속광물,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10% 오르면 국내 물가 상승률은 1.35%포인트 더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특정품목 언급하는 대통령, 물가 총동원된 정부=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그전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한 것 중 하나는 이전 두 정권이 시장경제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도 취임 일성부터 비즈니스프렌드를 강조해 올 정도로 시장을 중시했다. 즉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의 견제와 균형장치가 잘 돌아가게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특정품목(통큰치킨, 기름값)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정부가 각 부처의 힘(규제)을 이용해 해당업종, 기업체에 물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고공행진하는 기름값과 관련해 정부는 정유사에 기름값 인하만 요구하면서 절반이 넘는 세금에 대해서는 감면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세수가 줄어들고 효과도 적으니 기업들이 무조건 내릴 수 있는 선에서 내리라는 압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물가를 단기적으로 끌어내릴 수는 있어도 인상요인이 잠복해 있으면 추후에 더 큰 폭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2008년에 전기,가스요금을 묶은 이후 한국전력과 가스공사는 3조원(영업손실)과 5조원(미수금)의 손실을 봤다. 공기업이 손실이나 적자가 나면 결국 국민들의 세금에서 메꿔야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 밖에 안된다.
대기업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한 비판도 높다. 현재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정운찬 전 총리)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실적을 평가해 지수화해 공표하는 작업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선정 등을 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한 위원은 "만약 원자재값이 오르는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위해 납품단가를 올려주고 소비자를 제품가격을 인하한다면 동반성장 최고의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대신 그 기업은 망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금리 올리던날 재탕삼탕 전세대책 내놔= 금리를 올리던 지난 13일 정부는 전세대책의 일환으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자금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시장은 역시 싸늘했다. 소형ㆍ임대주택 공급방안은 원래 추진해온 정책이고, 다가구, 미분양 아파트 임대 전환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높다. 특히 전세 수요를 양산하고 있는 시장불안 해소책과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 움직임에 따른 방안은 아예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전문가들은 "내집마련으로 전세시장의 불안을 해소시켜야 하는데 이런 대책이 거의 없다"면서 "전세수요가 팽창해서 전셋값이 더 오른 면이있는데 무주택자들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초동대응 실패로 1조 땅에 묻은 구제역=전국에 확산중인 구제역과 AI는 정부가 초동대응에 실패하면서 200만마리가 매몰됐다. 땅에 파묻은 비용만 1조2000억원이 넘는다. 이런저런 비용을 합치면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신고된 것은 지난해 11월 23일. 그러나 방역 당국은 이를 29일에야 확인했다.정부가 구제역 발생 지역을 6일간 방치하면서 구제역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특히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려 구제역이 발생하고도 1개월 가량이나 백신 접종을 미뤄 구제역은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해에도 배추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음에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고 배추값 파동이 일고 나서는 가격이 최정점에 이르러서 대책을 고민하고 국정감사를 사흘 앞둔 시가에 발표해 급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낙관하다 2년연속 전력난 대국민담화="가정과 빌딩에서의 전기난방으로 인한 난방수요의 증가가 우려스럽다. 계속되는 한파로 인해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난방사용을 자제하고 과도한 전기소비를 줄여달라" 지난해 1월 12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한 대국민 담화문이다. 정확히 1년 뒤 같은날이니 지난 12일 최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5일, 1월 7일 전력수요가 사상최대를 경신했을때에도 지경부는 "올해도 대국민담화를 또 하겠냐"고 낙관했다.
그런데 10일에 이어 17일 최대전력수요가 정부 전망치(7250만kW)를 80만kW나 상회한 7314만kW를 찍었고 예비전력도 역대 최저치에 위험수준인 400만kW(404만kW)를 위협했다.작년 11월 지경부는 올 동절기 최대전력수요는 전년 대비 5.1%(354만㎾) 증가한 7250만㎾로 예상하고는 안정적 전력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경부는 지난해나 올해도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로 판매돼 저렴한 데다 전기난방기구 사용이 증가해서라는 이유를 내걸었다. 현재 전기요금은 원가의 94%수준에서 공급되고 있다. 팔면 팔수록 밑지는 현실에서 전기난방이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전력대란의 빌미를 제공해준 셈이다.
◆원가 이하에도 요금동결 가격구조 손 못대=정부는 에너지요금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공공요금 인상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말을 않고 있다. 원가 이하의 싼 전기요금을 고치지 못하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정부 청사와 공공기관의 난방온도 18도이하 유지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 414곳의 대형건물에 난방온도 20도 이하 유지 등이다. 이에 대해 과천의 한 공무원은 "평균 온도가 18도지만 건물 위치와 층별, 자리위치에 따라 10도 이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많다. 추워서 청사 출근이 겁난다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한 여성 공무원은 "정부가 솔선수범해야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감기나 몸이 아픈 직원이나 임신한 직원등은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온도를 낮추라는 것은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대증요법으로 한계..5% 성장 3% 물가 왜 고집하나=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가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잡기 어렵다"면서 "개별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정부의 일련의 조치와 대응들이 물가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경제원로인 조순 전 부총리는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현 정부의 실정을 나열하면서 일침을 가했다. 그는 물가관리기관을 자임한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서는 매우 부적절하다면서"공정거래위원회라고 하는 건 글자 그대로 공정한 거래를 하기 위해서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있는 기관이지. 물가를 잡는데 있는 기관은 아니"라면서 "제발 자기 기관의 담당 영역이 어딘가를 확실히 하고 모든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물가를 3%로 잡자면 그런 굳건한 의지가 있다면 동결해야 될 것은 공공요금의 동결이 아니라 공무원 봉급의 동결"이라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는 "정부가 성장률 5%, 5%라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GDP라고 하는 그 안에는 엉터리 개념이 많이 있고 선진국에서도 다 인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장률이 높아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다든지 물가가 올라간다든지, 이렇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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