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육장에서 금천고 교장으로 “그런데, 누가 좌천이래요?”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50.6점. 고등학생 영어 성적표가 아니다. 같은 서울지역 안에서 강남구와 금천구의 지난해 대입 수능 평균 성적 차이가 이만큼이다. 지난해 수능 언어, 외국어, 수리(나) 합계 평균은 강남구가 323.0점, 금천구가 272.4점이었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평균 2등급 학생은 강남구 1249명, 금천구 22명이었다. 두 지역의 학력 격차는 지역 격차만큼이나 벌어졌고 실망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크면서 하나 둘씩 살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집값 차이만큼 성적 차이도 벌어진 것이다.
지난 1일 이 마을의 한 공립 남녀 고등학교에 강남 교육을 주무르던 김성기 교육장(58)이 교장 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억울하다!"는 소문도 들렸다. 혹자는 좌천이라고도 했다. 강남 교육장은 임기를 마치면 서울고나 경기고 교장으로 가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장의 생각은 달랐다.
"좌천이라니요. 누가 그러던가요? 4년 뒤에 두고 봅시다. 남은 교직생활을 금천고에 던지기로 했습니다." 싱글벙글 웃음 가득한 얼굴에서 비장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학교에 처음 와서는 '무기력증'을 느꼈다고도 했다. 우선 시설이 낙후돼 있고 학생들도 의욕이 떨어져 있다는 것. 경사가 급한 비탈에 세워진 학교였고 교사동도 5개로 흩어져 있어 모든 것이 중구난방이었다. 심지어 교장실과 교무실도 한 쪽은 막혀 있는 반지하였다.
전문계고에 낙방하고 온 학생들도 상당수 섞여 있어 학력이 낮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금천고는 최근 3년 동안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못 내고 있다. 그는 "다행히 선생님들의 자질이 뛰어나시다"면서 "이 선생님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선, 특출난 교육성과를 낸 외부 전문가들을 모셔서 현재 상황을 진단 받고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 의견을 모으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교육청에 있으면서 어떤 분들이 성과를 내는지 똑똑히 봤다"면서 "금천고에 꼭맞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구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역 사회에서도 도움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금천구청과 힘을 합쳐 금천고를 금천구의 '교육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임기가 시작된 차성수 금천구청장도 금천구를 교육 도시로 만들겠다며 김 교장의 발령을 반기고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고유가 지원금 받아도 1인당 30만원 또 준다…18일...
"교단에 있을 때도 힘든 자리만 다녔습니다. 젊어서 상계여중에 첫 발령을 받고는 3년 동안 밤 9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습니다. 곽노현 교육감께서 '교회 장로님이시니 어려운 분들을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직접 얘기하시더라구요. 듣는 순간 남은 4년을 쏟아부을 곳이 여기구나 깨달았습니다. 교육감께서 최전선에 내세운 목표가 교육격차 해소지요. 4년 뒤면 정년입니다. 4년 뒤에도 한 번 와 보시죠. 금천구 집값이 두 배가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두고 봅시다."
취재를 마치고 교장실을 나서는 데 어둑어둑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교생들의 손에 피다 만 담배가 들려 있었다. 김 교장의 말처럼 아이들이 떠나는 동네에서 돌아오는 마을로 변신할 수 있을까?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의 시작은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파격적인 인사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