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어린이' 벗은 정수빈, "주전경쟁, 배운다는 자세로 뛴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약육강식이다. 강한 자만이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 주전 경쟁에는 나이, 선후배도 기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실력이다. 주어진 기회를 낚아채야 남들의 먹이로 전락하지 않는다.

프로 2년차 두산 정수빈은 냉혹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주전 외야수 자리.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 급할수록 코앞에 둔 고지를 천천히 오를 생각이다.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 하지만 내뱉는 말 한 마디는 베테랑이 따로 없다.
“초심을 유지한다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않겠는가.”

Scene # 1 벗어던진 낙마의 불운

올시즌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3월 6일 문학구장서 열린 SK와 시범경기에서 화를 당했다. 6회 수비에서 김강민의 타구를 잡은 뒤 펜스에 세게 부딪히며 오른 쇄골이 골절됐다. 불가피해진 장기 결장. 수술실로 들어가는 정수빈은 눈앞이 캄캄했다.
펜스에 부딪힌 뒤 나뒹굴면서도 공을 들어 보였다. 부상을 예측하지 못한 듯 보였는데.
아니다. 충돌 뒤 어깨에서 ‘찍’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라운드에 쓰러진 뒤 하늘을 보며 이내 “망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눈을 감고 부상이 근육에 그치길 간절히 바랐다.

팔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통증이 상당했다던데.
처음에는 조금 쑤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정밀검사 결과를 전해 듣고 정신이 멍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입원생활을 시작했다.
침대에서 늘 ‘불상사만 없었다면 주전으로 뛰고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참담했는지 모른다. 조급하기도 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너무 아파서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뼈가 금방 붙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됐을 때 바로 재활에 들어갔다. 러닝 등 주로 하체 위주 운동을 하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팀 동료들의 문병은 없었나.
손시헌, 정재훈 선배가 병실로 찾아와 위로해줬다. 김진 사장도 따로 발걸음을 했다. 얼굴을 보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몸 둘 바를 몰랐다.



야구를 다시 시작한 건 언제인가.
하체 운동을 한 지 일주일 쯤 지나서였다. 어깨 보강운동을 하며 조금씩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부상을 입은 지 두 달쯤 됐을 때는 경기에도 출전했다. 2군에서 10경기 정도를 뛰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예상보다 금방 붙은 쇄골은 운동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은 듯하다.
미신을 믿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부상에 시달리며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은 모두 떨쳐냈다. 타석에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선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린 지 오래다.

재활을 하며 야구장을 찾아와 따로 공부를 했다던데.
특별히 학습은 하지 않았다. 집에만 있기 답답해 야구경기를 보러 갔을 뿐이다. 관중석에서 보는 야구는 색달랐다. 그라운드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비춰졌다. 야구를 보다 폭넓게 알게 됐다고 자부한다. (잠시 생각하다)TV 중계 팀들은 대단하다. 갈 때마다 관중석에 숨은 내 얼굴을 교묘하게 잡아냈다. 두 번 얼굴이 전파를 탄 뒤로 부담이 돼 야구장 출근을 멈췄다.

어떤 점에 주안을 두고 경기를 관전했나.
투수의 투구폼이나 구질, 포수의 포구 자세 등을 눈여겨보며 타구가 어디로 가는지 유심히 살폈다. 타석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이다. 취침 전 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특정 투수로부터 안타를 때려내는 상상을 한다. 내 타격 폼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들인 습관인데 타격 비법 가운데 하나라고 자부한다.


Scene # 2 힘껏 고쳐 잡은 배트

정수빈은 5월 30일 고대하던 1군무대로 돌아왔다. 복귀는 목 타던 두산의 샘물과 같았다. 10일 현재 49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8푼9리 61안타 3홈런 17타점 13도루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특히 7월에는 오른 발목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종욱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웠다. 수비에서 다이빙 캐치 등으로 팀의 외야진 가운데 가장 수비 범위가 넓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앳돼 보이는 얼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경기를 풀어낼 줄 아는 선수다”라고 극찬했다.

이종욱의 복귀로 다시 불안해진 입지. 번트나 주루 플레이 등에서 여전히 맹활약을 보이지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은 자주 올라가지 않고 있다.

이종욱의 복귀로 선발 명단에서 다시 제외됐는데.
원래 자리로 복귀했을 뿐이다. 이종욱 선배를 뛰어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직 2년차다. 이긴다기보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선다.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준비하면 기회는 오게 돼 있다.

두산 외야진은 막강하다. 김현수, 이종욱, 임재철, 이성열 등이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한데.
입단 당시만 해도 막막했다. 화려한 외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지 의문이 들었다. ‘외야수 자원이 부족한 팀으로 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팀 합류 뒤 선배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며 더 큰 선수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라며 마음을 다잡은 게 1군에 합류할 수 있던 비결이다.

이종욱은 어떤 조언을 해주나.
경기 중 주로 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상황에 맞는 수비 위치와 다양한 캐치 방법 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이종욱 선배는 입단 초부터 롤 모델이었다.

지난해 2군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당시 팀의 2군 사령탑이었던 박종훈 LG 감독은 입단 동기인 박건우와 자주 비교를 했는데.
기사를 통해 몇 번 접한 적이 있다. (박)건우와 나를 주전과 백업으로 각각 용이하다고 분류했더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쟁을 통해 당당히 기회를 사로잡겠다.


최근 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하고 있다. 답답할 때도 많을 듯한데.
아직 부족함 많은 내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김경문 감독에게 감사하다. 경기 중반 그라운드를 나서지만, 어떻게든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올시즌 남은 경기에서 나만의 스타일만 잘 살려나간다면 분명 기회는 찾아올 거라 믿는다.

올시즌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열심히 하는 야수로 남고 싶다. 그래야 내년에도 기회가 올 테니까(웃음). ‘허슬 플레이’의 선두주자가 되고 싶은데 아직은 어려울 것 같다. 나중에는 ‘두산 베어스’라는 팀을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이미 허슬 플레이는 충분히 보여준 듯하다. 올시즌 펜스에 부딪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복귀 뒤 거침없이 다이빙캐치를 시도한다.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쳐서 몸을 사린다는 말을 듣기도 싫고. 두려움은 없다. 다만 한 번 큰 부상을 겪고 나니 연습 때는 조금 몸을 아낀다. 공이 펜스 근처로 간다거나 위험한 지역으로 떨어지면 잡지 않고 피한다(웃음).

타석에서는 강심장이다. 당차게 배트를 휘두른다. 하지만 가장 크게 놀란 공이 있다면.
SK 김광현의 볼이다. 타석에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온다. 모든 구질이 위력적이다. 지난해 10번의 맞대결에서 안타 한 개를 쳤는데 우중간에 떨어지는 빗맞은 텍사스 타구였다. 운 좋게 얻어낸 안타였지만 홈런을 쳤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사실 모든 투수가 만만치 않다. 투수 모두가 고교 시절 초특급 에이스들이었으니까. 프로무대는 다르다는 것을 매번 저절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프로에서 라이벌로 생각하는 타자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또래 친구인 넥센 장영석이나 KIA 안치홍이 아닐까(웃음). 이들과 경쟁하려고 애쓰진 않는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올시즌 과녁은 2할 8푼 이상 타율과 30도루였다. 부상 등 우여곡절을 감안하면 꽤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Scene # 3 "나도 이제 당당한 성인"

정수빈은 올해 20살 성인이 됐다. 부모님은 그를 더 이상 어린 아들로 보지 않는다. 독립생활도 허락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잠실구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 따로 지낸다. 20살, 새로운 인생. 정수빈은 많은 것을 터득하고 있다. 고교시절 합숙훈련 등을 통해 머리는 성숙한 지 오래.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대로다. 동안의 외모 탓에 그를 ‘어린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야구장 밖 정수빈의 가장 큰 고민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본가가 있는 경기도 화성에 있다. 잠실구장 출근에만 대략 두 시간이 소요됐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운전대를 잡을 때면 늘 졸음이 쏟아졌다. 체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혼자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선수들과 함께 있어 딱히 힘든 점은 없다. 어머니가 주말마다 와주시기도 하고. 처음에는 어머니가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

어머니가 야구를 허락한 뒤 고생이 많았을 듯하다.
집에 아들이 나 하나뿐이다. 그래서 승낙을 받아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작정 떼를 썼다. 초등학교 때는 왜 그리도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시작한 건 육상부였는데 꽤 성적이 좋았다. 아마 어머니가 끝까지 야구를 반대했다면 축구를 했을 거다(웃음).

또래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이다.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잘 크지 않았다. 하지만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남들보다 더 빠르고 힘도 셌으니까. 다들 홈런을 칠 때마다 놀라는데, 두꺼운 손목을 보여주면 한 번 더 놀란다(웃음).

혼자 지내다보니 요리 솜씨도 빼어날 것 같은데.
김치찌개나 참치를 이용한 음식이라면 자신 있다.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소시지를 먹어도 일일이 칼집을 내고 볶는다. 최근에는 스파게티 조리법을 완벽하게 터득했다(웃음).

야구장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나.
거의 없다. 작은 키에 얼굴도 동안이다 보니 운동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볼보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유명하면 많이 불편할 것 같다. 팀 내 김현수 선배를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중학생과 같은 여린 외모의 소유자다. 동안의 비밀이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어리게 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린이’라는 별명도 나쁘지는 않지만 썩 마음에 들 정도는 아니다. 사실 이전부터 외모 탓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다중인격’이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얼굴은 어린데 하는 행동이 성인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술집에 들어가도 주민등록증부터 확인한다. 기사를 통해 팬들에게 꼭 당부 드리고 싶다. 나도 이제 성인이다. 인정해 달라(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공습에 숨진 엄마 배에서 나온 기적의 아기…결국 숨졌다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