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도 차리기전에 훈련기는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때 신체가 느끼는 중력가속도는 최대 4G다. 사람이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는 1G(G는 중력 가속도 단위·중력의 1배), 바이킹을 탈 때는 최고 2G인 점을 감안한다면 만만치 않은 가속도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지난 3월25일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 예하 212 비행교육대대를 찾아 훈련 체험을 했다. 그러나 곧 이어 백령도 해역을 지나던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고 46명의 장병이 전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훈련체험기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 달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어뢰에 의한 것임을 밝혀낸데 이어 그에 따른 조치가 취해지고 있고 우리 군의 사기를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 위해 체험기를 게재한다.<편집자주>
23번째 군부대체험을 가는 날이다. 새벽3시에 눈을 떴다. 이번 체험은 다른 어떤 체험과 달라 설레임이 생겼다. 육군 유격훈련장이나 과학화훈련단도 아니요, 해군 해난구조대(SSU)나 특수전여단(UDT) 체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훈련은 바다든 육지든 두 발로 가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그런 체험이었다. 그러나 이날 찾아간 곳은 두발이 땅에서 떨어져야 하고, 자칫 정신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체험이었기에 두려움과 설레임이 뒤섞인 채 새벽 4시30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오전 8시 조금 지나 충북 청주에 도착했다. 전투기조종사가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공군사관학교 예하 212 비행교육대대(대대장 김재규 중령 공사39기)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이륙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주룩 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빗방울에 '이륙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마중 나온 정훈 장교가 "비행훈련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말하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날 탑승할 훈련기는 T-103이라고 했다. 러시아제로 대한민국 공군이 지난 2004년부터 불곰사업으로 들여온 초등 훈련기였다. 총 23대가 조종사 양성에 쓰이고 있다고 했다. 랜딩기어가 튼튼한데다 대당 16만 달러 정도로 가격에 비해 훈련 효과가 매우 높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랜딩기어가 튼튼한 덕분에 '급조한' 활주로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대대 관계자는 "안전운행기간이 15년으로 앞으로도 공군의 주력 훈련기로 이용될 것"이라면서 "조작실수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복능력이 우수해 훈련에 적합한 기종"이라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비행 '짝궁'을 만나기 위해 교수실을 찾아갔다. 교수실에서는 정명훈 교수(공사24기)가 교육생인 최지영 소위(공사 58기)에게 이착륙 이론을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최 소위는 앳되보였다. 기자의 귀에는 "비행기의 착륙과 이륙은 모두 자세가 같다"는 말만 들렸다. 최 소위를 보니 "여군에게 오늘 생명을 맡겨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훈련기에 오르기 위해 교수실을 나설 때 정 교수는 이런 속내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여군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 교수는 특히 "한명도 탈락하지 않고 전원 비행교육을 수료한 이번 기수와 비행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다시 최 소위를 바라봤다.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가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에서 11주간 입문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이어 KT-1 훈련기의 기본과정과 T-50 초음속 훈련기의 고등과정 등 총 28개월의 과정을 이수해야만 명실상부한 전투기 조종사가 된다. 이중 입문과정에서 훈련생의 20~25%가 탈락한다. 그러나 이번 기수는 비행공포를 이겨내고, 적성과 기량 등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실을 나와 200여m 떨어진 활주로에 도착하니 하얀색 T-103이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고막을 찢는 굉음을 내고 있는 훈련기는 마치 곧바로 하늘로 치솟을 듯한 태세였다. 최 소위와 교관인 라대영 소령(공사 45기)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최 소위가 앞좌석 왼쪽, 라 소령이 오른쪽, 기자는 뒷좌석에 앉았다. T-10 내부는 자동차 면허시험장의 자동차와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연습용 자동차는 도로주행하다가 위험상황에서 교관이 대신 브레이크를 밟듯이 T-103도 위험상황에 대비해 교관이 조종간으로 비행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두 조종사가 훈련기 상태를 점검했다. 훈련기 내부는 일반 승용차와 비슷했다. 공간이 넓어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최 소위는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닐봉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급격하게 기동하다보면 음식물을 토할 수 있기에 미리 준비한 것이다. "걱정말라"고 호기를 부렸다. 이륙하자고 재촉하기도 했다.
오전 11시께."44 Cleared For Take-off(44번 이륙)". 관제탑의 이륙명령이 떨어졌다. 훈련기는 엔진출력을 급격히 높였다. 곧이어 기자의 몸은 좌석 뒤로 쑥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사뿐히 활주를 차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여객기와는 달리 이륙 때의 충격이나 빠른 속도가 몸에 그대로 전달됐다. 아찔했다. 자동차가 시속 200km속도로 달릴 때의 기분이라면 과장일까. 순식간에 창공으로 치솟은 훈련기는 대통령이 별장으로 이용했다는 청남대 위를 날고 있었다. 광관비행은 여기까지였다.
라 소령은 눈깜짝할 사이 기동훈련이 가능한 1500m상공까지 훈련기를 몰고 갔다. 단독비행을 할 수 있는 최 소위에게 조종간을 맡겼다. 이어 "DIVE & ZOOM"을 지시했다. "급강하하라"는 지시같았다. 어리 둥절하고 있는 사이 훈련기는 갑자기 머리를 숙이더니 100m 아래로 급강하했다. 온 몸의 피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현기증이 났다.
정신도 차리기전에 훈련기는 다시 급상승했다. 신체가 느끼는 중력가속도가 최대 4G(중력의 4배의 힘을 받는다는 뜻)라고 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탈 때 중력가속도가 최고 2G인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가속도였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기자는 현기증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뒤를 돌아보는 최 소위는 웃으면서 "비닐봉지 그냥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교육생이라고 얕봤던 게 몹시 후회가 됐다.
곧이어 무동력 비행 훈련이 계속됐다. 말 그대로 비행도중 엔진을 멈추는 것이다. 시동을 끄자 한동안 평행을 유지하던 훈련기는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듯 덜컹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프로펠러는 다시 돌아갔지만 고도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은 공포 그자체였다. 기자가 괴로워하자 라 소령은 "이 모든 훈련을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조종사의 첫 단계인 입문과정을 수료한다"고 설명했다.
순식간에 한 시간 남짓한 비행시간이 흘렀다. 겨우 정신이 든 기자의 눈에 활주로가 큼지막하게 들어왔다. 비행기 문을 열고 내리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뮬레이션 훈련을 받았다. 컴퓨터로 이착륙 훈련 등을 하는 과정이었다.30분이 1분처럼 빨리 지나가버렸다.
교육생들은 입문과정의 단독비행을 마치면 파란 머플러, 기본과정을 마치면 또 하나의 파란 머플러를 받는다. 고등과정을 마쳐야만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머플러를 목에 멜수 있다고 했다. 창공을 지키는 파일럿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대대 문을 나섰다.
훈련기의 조종석 모습. 훈련기 T-103는 러시아제로 대한민국 공군이 지난 2004년부터 불곰사업(러시아에 빌려준 경협차관을 무기로 받은 사업)에 따라 총 23대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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