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간지 국제면에 의미 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972년 미국이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할 당시 미국이 부담키로 한 토지원상복구비용을 실제로는 일본이 대신 부담한다는 밀약이 있었던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신문에 보도되어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던 소위 ‘니시야마 사건’으로 정부의 강력한 부인에 기자가 실형을 받고 종결됐으나 38년 만에 진실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1971년 6월17일 미국과 일본 간에 오키나와협정이 조인되고 11월24일 사회당과 공산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비준안이 의회에서 가결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당의 한 의원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 복구비용에 대한 밀약이 있다고 폭로하고 외무성 기밀문서 사본을 제시하며 내각 퇴진을 요구합니다.

정부는 기밀문서 사본 유출에 따른 수사에 착수해 외무성의 한 여성사무관이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외무성 출입기자인 니시야마에게 건네준 것으로 밝혀내고 여성사무관과 기자를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또 검찰은 기소장에서 ‘니시야마가 외교기밀문서를 기사화하려고 유부녀인 여성 사무관에게 접근하여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이를 이용해 문서를 입수했다’며 그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몰고 가고 특종 기사를 흥미위주의 황색스캔들로 변질시켜 여성공무원은 1심에서, 기자는 2심에서 각각 유죄가 선고됩니다.

마이니치신문은 기자가 체포되자 ‘정치권력의 언론자유에 대한 도전’이라며 시민단체 등과 연대하여 반발했으나 기자가 떳떳지 못한 방법으로 취재했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자 사과문을 게재하고 추적보도를 중단합니다. 기자는 자의반 타의반 신문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일본과 미국과의 비정상적인 밀약이 있었다는 것은 정부의 일관된 부인으로 묻히고 맙니다.


그러나 니시야마는 공권력에 대해 꾸준히 소송을 제기, 지난 1일 당시 반환협상 실무책임자였던 전 외무성 미국국장으로부터 “미국쪽과 문서를 교환했다”는 증언을 이끌어냅니다. 정권의 공작에 의해 본말이 전도된 사건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이와 관련, ‘밀약정보 공개 요구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총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스캔들로 치부됐던 사건이 이제야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이니치신문 전 임원이었던 가와치 다카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이니치신문의 판매부수가 급격이 떨어지고 불매운동까지 당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고 ‘신문사-파탄한 비즈니스모델’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하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정권의 집요한 공작이 사건의 핵심을 얼마나 잔인하게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집니다. 당시 언론이 본질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보다 더 하였다면 마이니치신문은 오히려 독자의 성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증언이 나오자 당사자인 마이니치신문은 ‘38년 전의 일이지만 하토야마 내각은 외교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며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자민당 정권이 계속되었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을 통해 ‘외무성 전문가 위원회가 오키나와 반환관련사항을 포함한 4가지 밀약에 대해 조사를 추진중이다’고 전제하고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며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질타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사건의 본말이 뒤바뀌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X파일 사건’이 그렇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삼성그룹의 불법 대선자금과 소위 검찰 일부의 ‘떡값’으로 시작되었으나 안기부 불법도청으로 불똥이 튀어 사건의 단초가 됐던 사람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기자와 당시 안기부장들이 곤혹을 치렀습니다. 물론 일본의 사례와는 달리 공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공작은 아니었으나 수사가 전개되면서 조금은 석연찮게 변질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의문입니다.


올해는 언론 보도와 미디어 지평의 변화를 놓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사건건 소위 보수 성향 언론과 진보 성향 언론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며 같은 사안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한 언론학자는 요즈음 우리 언론은 ‘사실성’은 충실하나 ‘객관성’은 담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언론의 객관성이 소위 ‘주관주의적 객관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시각과 여러 분석에서의 의견 개진은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미디어산업의 변화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언론사들이 격렬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 저러한 잡음도 많이 들립니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뒷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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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이 지난 일을 가지고도 진실을 밝혀내려 노력하는 일본의 사례를 접하며 우리 언론들도 얼마나 독자들에게 충실한지, 사건들을 얼마나 국민의 시각에서 다루는지 종사자의 일원으로서 반성해 봅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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