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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대통령이 싫으면 닥치고 꺼지라고?

최종수정 2010.11.25 16:06 기사입력 2009.04.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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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방송가가 때아닌 정치 외압 논쟁으로 뒤숭숭하다. MBC가 봄 개편에 맞춰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기 진행자들을 물갈이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KBS는 특정 유명 그룹의 자사 프로그램 출연을 잇달아 취소했다.

MBC 경영진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김미화와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를 교체할 생각이었다. MBC는 경제적 이유를 댔다. 반발이 MBC는 물론 네티즌 사이에서도 확산되자 결국 신경민 앵커만 교체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정치적 외압은 없다고 강조했다. YB(윤도현 밴드)는 잇단 KBS 예능 프로그램 출연 취소 통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KBS는 출연중복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윤도현은 과거 KBS2 '러브레터' 하차 당시 정치적 외압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YB(윤도현밴드)

YB(윤도현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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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의 소속사 대표는 "대중예술인들의 사회참여 활동은 앞으로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중예술인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책임 있는 사회적 주체로 소신에 입각해 사회비판과 행동에도 나설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직간접적인 정치 참여로 인해 만들어진 사실은 연예계에는 잘 통하지 않는 진리이다.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다. 우파 언론을 자처하는 매체들은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배제한 채 이를 '잘못'이라고 규정한다.

◆ 딕시 칙스, 부시와 맞짱뜨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300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뿌리가 유럽에서 기인한 것을 감안하면 수천년에 이른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 제도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과인 만큼 '최선'이나 '최상'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그것보다 조금은 성숙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 특히 음악인들의 정치 참여는 더욱 그렇다. 단 두 개의 정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독특한 정치 체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거 시즌만 되면 민주당과 공화당을 각각 지지하는 음악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캠페인을 벌인다. 이는 당선 후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팝 뮤지션들의 정치적 발언은 클린턴 정부 때 잠잠했다가 부시 정권 시절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급진적인 펑크 록 밴드에서 보수적인 컨트리 가수까지, 젊은 팝스타에서 예순을 넘긴 노장 가수까지 다양했다. 표현의 자유가 우리보다는 더 많이 보장되는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정치적 발언에 언론과 대중들이 무조건 호의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YB가 겪은 것보다 더 심한 반대 여론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딕시 칙스의 2006년 앨범 '테이킹 더 롱 웨이'

딕시 칙스의 2006년 앨범 '테이킹 더 롱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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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예가 여성 컨트리 그룹 딕시 칙스였다. 딕시 칙스는 2000년대 미국 컨트리 음악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꼽히며 그래미시상식에서 통산 11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다. 딕시 칙스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2003년 3월 런던 공연에서 내뱉은 한마디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전쟁과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리드싱어 나탈리 메인스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나는 대통령이 싫어요"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딕시 칙스의 발언에 영국 언론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태연했지만, 미국 매체들은 달랐다. 컨트리의 본고장인 내시빌의 라디오 방송국은 전화통에 불이 났고 댈러스에 위치한 2개 라디오 방송국은 당시 28주간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1위에 머물러 있을 만큼의 인기를 누리던 딕시 칙스의 음악을 당분간 방송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캔사스시티 라디오방송국은 딕시 칙스의 CD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자고 제안했으며, 포틀랜드 라디오 방송국은 딕시 칙스의 공연 티켓을 공공장소에서 태우자며 보이콧 운동에 앞장섰다. 노장 컨트리 가수 멀 해거드는 딕시 칙스에 대한 공격을 "마녀사냥"이라 비판했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나탈리 메인스는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는 줄도 모르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이 많은 미국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분리시키고 있다는 느낌도요. 좌절을 느꼈기 때문에 했던 말이었어요. 표현의 자유는 미국인으로서 가진 특권이잖아요."

◆ 왜 딕시 칙스만 마녀사냥이었나?

딕시 칙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미국으로 돌아와 즉시 사과문을 발표했다. 메인스는 성명문을 통해 "미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부시 대통령에게 사과한다. 제 발언은 무례했다. 백악관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최고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꼬리를 내렸다. 마음이 바뀐 것인지 소속 음반사의 결정인지 알 수 없지만 여론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을 반대한 팝 뮤지션들의 목록과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2004년 오프스프링, 겟업키즈, 알카라인 트리오, 미니스트리, 섬41 등 유명 록 밴드들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의 제목은 '부시에 반대하는 록(Rock Against Bush')이었다. 몇 달 뒤 그린 데이, 푸 파이터스, 랜시드, 옐로카드 등이 모여 'Vol. 2'를 만들었다.

19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나 우드스탁 페스티벌처럼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뮤지션들의 역사가 이어온 미국에서 유독 딕시 칙스의 발언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소비자들의 성향이 전혀 다른 탓이다. 컨트리 음악은 대부분 가정과 자연, 사랑과 우정 등을 노래하는 장르로 상당수의 팬들이 미국 남부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장윤정이나 나훈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인인 것이 수치스럽다"라고 말한다면 비슷한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딕시 칙스는 발언의 수위를 낮추는 대신 정치적 소신을 유지했다. 2004년 가을 대선 직전 '변화를 위한 투표(The Vote for Change)'라는 제목의 공연에 참여한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40여 차례 이어진 공연에는 펄 잼, 잭슨 브라운, 존 포거티, 크로스비 스틸스 & 내시, 존 멜런캠프, 베이비페이스, REM, 보니 레이트, 브루스 스프링스틴, 벤 하퍼, 데이브 매튜스 밴드 등 온갖 장르의 뮤지션들이 팀을 짜 참여했다. 논란 속에서도 딕시 칙스는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 부시 "딕시 칙스가 뭐라 하든 괜찮다"

딕시 칙스의 이러한 행동에도 부시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딕시 칙스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라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정말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옳은 일을 하고 싶고 그것에 대해 가수들이나 배우들이 발언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괜찮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이 대단한 이유 아닌가"라고 부시는 당시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지막에 "그것(표현의 자유)이야말로 미국과 이라크가 극명하게 반대되는 점이다"라고 말해 초점을 잃긴 했지만.

[사진=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

[사진=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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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시 칙스는 런던 공연 두 달 뒤 미국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에 누드로 나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보이콧' '반역자' '떠벌이' '딕시 창녀들' '사담의 천사들' '자랑스러운 미국인들' '애국자' 자유로운 발언' 등의 문구를 몸에 새긴 채 나체로 촬영한 사진은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부시 대통령은 딕시 칙스에게 "정치적 발언 이후 앨범 판매량이 급감한다 해도 가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유란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맞는 말이다. 이는 윤도현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김미화나 신경민 앵커에도 마찬가지다.

정치란 그 자체로 찬반이 뚜렷하게 갈리기 쉬운 주제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철학을 강하게 드러낼수록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늘어날 것이다. 걱정스러운 일은 표현의 자유를 막는 일이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정부가 막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고, 시민들이 서로를 막는다면 참담한 일이다. 소신을 밝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막는 일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좋다. 찬성과 반대, 반대에 대한 반대가 공존하며 소통하는 사회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바람일까?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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