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몇몇 중소기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안산 섬유업체의 A대표는 "직원 4명에 매출 40억원, 1인당 매출 10억원에도 섬유업이 사양산업이라고 대출을 안해주더라"고 하소연했다. 정책자금을 받아보라는 기자의 말에 "정책자금도 연줄이 없으면 못받는다고 한다"며 "돈이 필요없는 곳에만 가고 필요한 곳으론 가지 않는 왜곡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툴툴댔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정책자금 및 신용보증과 관련된 브로커가 기승을 부린다는 얘기마저 돌았었다. 일부에서는 "정책자금을 어떻게 하면 빨리 받을 수 있나. 누구좀 소개시켜달라"는 터무니없는 민원마저 들어왔을 정도.

일부 퇴직자들이 컨설팅을 명목으로 이런 브로커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이런 얘기가 나올때마다 정책자금 주무부처와 집행기관과 보증기관측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한 관계자는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집행하는 데 브로커라는 존재가 절대 개입할 수 없다"면서 "기자들이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중소기업청이 뜻밖의 자료를 냈다. 방송을 통해 일부 업체가 용기를 내 브로커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면서 파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기청은 정책자금 알선업자 또는 브로커가 개입해 지원받은 걸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까지 포상금을 주고 신고센터도 운영하겠다고 했다. 수천만원, 수억원의 세금을 빼가는 브로커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파악하기도 인지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최고 100만원이라는 포상금도 터무니없이 적어 실효성마저 의심간다. 현금영수증 발급거부 신고 포상금이 최대 50만원, 부패신고 포상금이 최대 1억원이다. 혈세낭비와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노력과 용기에 대한 보상으로 100만원은 너무 적은 돈이다.

정책자금집행기관과 보증기관 실무자들의 고충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와 조기집행으로 인해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위해 일하다보면 업무상 오류나 착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변명도 정책금융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공정성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중소기업에 풀기로 한 자금은 무려 46조원에 달한다. 이는 분명히 고사직전에 처한 중소기업에 쓰여야할 혈세다. 한푼도 새 나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양천구, 해남읍 등 지자체의 보조금횡령에 더욱 분통터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게 갈 돈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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