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걸친 경제동반자...재도약 새희망
1899년 황실자금 기초 창립 민족금융 선각자 역할
잇단 합병 구조조정 통해 자산 200조 순익 1조 돌파
$pos="C";$title="";$txt="";$size="531,354,0";$no="2009011210484276483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선 가운데 우리은행이 110주년을 맞았다.
세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생산은 물론 소비, 투자, 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서민과 빈곤층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이미 최악의 경기가 뼛속까지 파고든 상태.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인 십년을 11번이나 지낸 110년. 실물경제가 본격화되면서 경기가 급속 하강될 것으로 우려되는 올해 국민들의 마음도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은행이 지나온 110년을 통해 앞으로 경제도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돌아본 110년 '위기도 있었다'=우리은행은 지난 1899년 최초의 민족자본은행인 '대한천일은행'으로 창립했다.
110년의 역사는 서양제국주의 침탈과 외국계 은행의 진출로 자주금융과 전통상업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1월 30일 설립된 하늘아래 첫 번째 은행이라는 은행명을 가진 대한천일은행은 민족금융의 선각자들이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 즉 금융발전이 곧 경제발전의 기초'라는 창립 이념을 바탕으로 삼았고, 고종 황제의 윤허와 황실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지원 받았다.
대한천일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담당하는 일반은행의 역할과 더불어, 화폐 발행과 재정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은행의 역할도 수행했다.
이 은행은 구한말 1899년에 고종황제의 내탕금(황실자금)을 기초로 민족자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상인층이 중심이 돼 만들었으며, 영친왕이 제2대 은행장으로 취임한 역사적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1899년 5월 최초 은행지점인 인천지점을 설치했고, 1909년 조선의 대표은행으로 성장을 기념해 서양식으로 본점 건물을 신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조선 총독부의 신(新)은행령 공포로 일제의 경영간섭이 이뤄졌고,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일본인들의 경영참여, 일본계 부실은행과의 합병으로 동반 부실화로 경영침체를 맞게됐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북한지역 영업망 상실은 은행 영업에 큰 타격을 받았고, 한국전쟁 중에는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지만 부산에 임시본부를 설립하고 전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기도 했다.
▲IMF 경제위기에 불가피한 동참= 이후 외환위기 IMF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1997년 초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한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그해 11월 우리정부는 IMF에 구제금융 요청했고, 우리은행의 시련은 시작됐다. 주요기업들과 함께 한국경제 성장의 주 역할을 담당했던 우리은행은 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인한 부실채권의 증가로 경영 상의 위기를 맞았다.
1998년 대동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 퇴출을 시작으로 1999년 1월 금융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상업"한일 두 대형은행은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403개의 점포의 통폐합, 직원 5569명의 감축을 하는 등 뼈를 깎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1999년 8월 해외 DR 10억 달러 발행, 사업부제중심으로의 조직 개편을 단행해 위기 극복을 시도 했으나, 대우그룹 사태와 금융권 제2차 구조조정으로 인해 공적자금 4조6000억 원이 재투입되는 또 한 번의 시련을 치러야 했다.
▲위기극복 재도약 '다시 뛴다'= 시련을 겪었지만 우리은행은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1년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 하고, 2001년 최초의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그룹 자회사에 편입, 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했고, BPR 프로세스, 신용리스크 관리 시스템, 성과급제 등을 도입하고, 전산 시스템 전면 교체하는 시스템적인 변화을 가져온 것.
이에따라 합병과 구조조정 후 처음으로 2001년 당기순이익 7129억원의 흑자시현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5년 조흥은행을 합병한 통합 신한은행의 출범으로 우리은행은 은행권 자산 순위에서 국민(197조), 신한(163조)에 이어 3위의 위치에 놓이게 됐다. 또한 자산 규모 4위인 하나(103조)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시 은행권 4위로 뒤쳐질 수밖에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
우리은행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MOU 체결로 인해 LG카드 인수가 실패 하는 등 M&A를 통한 성장전략에 한계에 부딪히자, 자체성장 전략을 추진했다. 2006년 당시 황영기 은행장과 이종휘 현 은행장 (당시 수석부행장)은 우량 자산과 고객 위주의 건전정도 영업을 통해 한 해 동안 자산 47조를 증가 시키는 영업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은행은 자산 200조 돌파, 2003년 이후 5년 연속 당기 순이익 1조 이상 시현 등 110년이라는 한국 금융사에 있어 역사적 전통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지난해 6월 이종휘 신임 행장이 취임하면서 위기에 더욱 탄탄한 은행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종휘 행장은 "올해 영업 패러다임 혁신을 통해 내실경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수익성과 건전성, 유동성에 기초한 전략적 성과를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윤정 기자 you@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고유가 지원금 받아도 1인당 30만원 또 준다…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