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지인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정치 성향인가." 나는 "중도 언저리에서 사안에 따라 때론 보수, 때론 진보적이다"고 답했다. 그는 "그건 부유(浮遊)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나는 부유하고 있다. 개별 사안은 물론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도 정치 성향은 변화한다. 명확하게 한쪽을 편들지 않는 경우 대개 '중도'라고 하지만 이런 성향의 유권자는 '부유층'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해 보인다.
6·3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대권후보가 속속 확정되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이재명 전 대표가 압도적 지지로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의힘은 29일 오후 2차 경선 결과를 발표한다. 이날 과반 지지율을 얻는 후보가 없다면 다음 달 3일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개혁신당에서는 이준석 의원이 일찌감치 대선 후보로 뛰고 있다.
이번 대선 결과를 결정지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조기 대선을 불러온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다.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물음에 국민의힘은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거나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승부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처절한 반성과 함께 과거와의 단절이 절실하다.
또 하나는 경제다. 우리 경제는 저출생·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미·중 관세전쟁까지 덮쳐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요즘 먹고 살 만하다'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특히 건설업 종사자와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크다. 경제가 나빠진 것이 윤석열 정부 탓인지,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은 민주당 탓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여본들 부유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빼앗기는 어렵다. 관건은 비전이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생 공약을 보면, 이재명 후보가 저만치 앞서 나간다. 좌편향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중도·보수'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안팎에서 비판이 있지만, 경제에서만큼은 확실한 실용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결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재정정책의 낙수효과냐, 분수효과냐 등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지금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기업의 창의적인 투자가 함께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탈원전과 같은 비현실적 정책은 불안감만 키운다. 현실을 냉정하게 수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경선이 끝나지 않은 국민의힘에서는 이렇다 할 경제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선 후보 결정 이후 발표될 공약이 얼마나 참신할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대선에 뛰어들 경우 후보 단일화를 통한 '빅텐트' 전략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년간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다는 점은 문제다.
대선이 35일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어느 때보다 많은 유권자가 부유한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갈지, 아니면 외면할지. 부유층이 보수에 한 번 더 기회를 줄지, 민주당을 선택할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 기준은 대선 후보 확정 후 벌어질 경제·민생 공약 대결이 될 것이다. 경제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공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유하는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
조영주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yjcho@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