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2026 금호영아티스트’ 2부
박현진·정수정·최지원이 그린 애도와 욕망, 삶의 잔상

노란 빛의 고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개가 통과해야 할 타이어 점프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앞에 놓인 것은 살아 있는 개가 아니다. 박현진의 전시장에는 로봇 개 '에코'가 지나간 훈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부르면 달려오고, 뛰어넘고, 교감해야 할 자리에 기계의 작동음과 죽은 반려견의 숨소리가 겹친다. 실패한 훈련장은 애도의 장소가 된다.

박현진, _타이어 점프 I_, 2026, 클레이, 실, LED, 센서, 스틸, 180x80x20cm. 금호미술관

박현진, _타이어 점프 I_, 2026, 클레이, 실, LED, 센서, 스틸, 180x80x20cm.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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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026 금호영아티스트' 2부는 젊은 작가 셋의 개인전으로 구성됐다. 박현진의 '에코 트랙스', 정수정의 '하얀색 운동화: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잖아', 최지원의 '글레이즈드 피버'다. 세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와 이미지를 다루지만, 이상하게 한 방향을 향한다. 사라진 것, 멈춘 것, 식어버린 것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쪽이다.


박현진의 작업에서 개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길들이고, 부르고, 기다리게 만든 존재다. 작가는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 '뽀뽀'의 죽음 이후에도 남는 기억과 감정을 기계와의 관계로 옮긴다. 인공지능 로봇 개 에코는 어질리티의 규칙에 잘 맞지 않는다. 민첩한 반응도, 눈빛의 교환도, 몸의 즉흥성도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작가는 계속 부른다. 그 반복이 중요하다. 응답이 없는데도 부르는 일, 돌아오지 않는 것을 향해 몸을 숙이는 일이 이 전시의 중심에 있다.

정수정의 회화는 훨씬 더 크게 몰아친다. 너비 10m의 '하얀 운동화들'에서는 인물과 자연, 동물과 사물의 형상이 서로를 밀어붙인다. 화면은 어떤 사건 직전의 공기처럼 팽팽하다. 하얀 운동화는 멈춘 발걸음처럼 걸려 있고, 인물들은 한 장면 안에서 도망치고, 붙잡고, 휩쓸린다. 죽음은 여기서 끝의 이름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세게 움직이게 만드는 압력이다.

정수정 개인전 '하얀색 운동화_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잖아' 전경  이미지. 금호미술관

정수정 개인전 '하얀색 운동화_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잖아' 전경 이미지.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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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은 레오 카락스의 영화 '홀리 모터스'의 문장에서 왔다.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다는 말. 다소 이상하고도 정확한 문장이다. 죽음은 때로 모든 고통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은 살아 있는 시간 안에서만 발생한다. 정수정의 그림이 붙잡는 것도 그 지점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죽음의 감각이 삶을 더 격렬하게 흔든다.


열이 표면 아래에 있는 풍경, 최지원의 전시장에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은 매끄럽고 차갑다. 그러나 그림 속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다. 작가는 19세기 유럽의 도자기 인형과 난초를 나란히 놓고, 아름다움이 어떻게 수집과 소유의 욕망으로 바뀌는지를 묻는다. '난초 열병'은 식물에 대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국적인 것을 가져와 바라보고, 분류하고, 소유하려는 시대의 열기였다.

최지원, _난초 열병_의 부분, 2026, 캔버스에 유채, 181.8×454.6cm. 금호미술관

최지원, _난초 열병_의 부분, 2026, 캔버스에 유채, 181.8×454.6cm.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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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최지원이 그 역사를 정면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인형의 얼굴, 난초의 색, 유약처럼 반짝이는 표면을 확대한다. 차가운 도자기와 뜨거운 열망이 한 화면에 놓인다. 살아 있지 않은 얼굴이 욕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 관람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까지 의심하게 된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안에는 언제나 조금의 소유욕이 섞여 있다.

세 작가의 전시는 모두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말하지만, 그 가능성은 밝고 가벼운 미래형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가장 오래된 문제로 돌아간다. 죽은 개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죽음을 안고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디까지 순수한가. 젊은 작가들이 붙잡은 것은 새로움이라기보다, 누구도 새롭지 않게 통과하지만 매번 다르게 아픈 감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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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영아티스트'는 2004년 시작돼 현재까지 107명의 신진 작가를 선정해 개인전 개최를 지원해 온 프로그램이다. 올해 2부 전시는 제23회 선정 작가 6명 중 박현진, 정수정, 최지원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전시는 31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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