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지고 CPU 뜬다…에이전틱 AI가 불러온 ‘반도체 2차 대란’
에이전틱 AI 시대 CPU 작업 비율 증대
선단 파운드리·후공정 쿼터 이미 매진
품귀 수혜 FC-BGA 등 밸류체인 확산
올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주인공이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중앙처리장치(CPU)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GPU 확보 경쟁이 첫 번째 사이클이었다면, 이제는 CPU와 시스템 최적화가 두 번째 사이클의 핵심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인공지능(AI)이 단순 답변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실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으로 CPU가 재평가받는 모습이다.
에이전틱 AI 시대, '지휘자' CPU의 귀환
시장조사업체 그로쓰리서치는 27일 보고서를 통해 "AI 인프라의 병목이 GPU에서 CPU로 이동하고 있다"며 향후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는 단순히 GPU가 몇 개인가가 아니라, CPU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율하는가에서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GPU는 AI 학습과 추론의 핵심 연산을 담당하며 시장을 독식해왔다. 기존 챗봇형 AI 구조에서 CPU는 사용자의 입력을 정리해 GPU에 전달하는 보조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에이전틱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에이전틱 AI는 단발성 답변에 그치지 않고 웹 검색, 데이터베이스 조회, API 호출, 코드 실행 등을 반복하며 결과가 미흡할 경우 스스로 재실행하는데, 이 복잡한 과정을 조율하고 전체 흐름을 관리하는 '오케스트레이터(지휘자)' 역할을 CPU가 수행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조지아공과대학 연구에 따르면 에이전틱 AI의 작업 흐름에서 CPU 처리 과정은 전체 지연시간(레이턴시)의 50~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GPU 연산이 아무리 빨라도 CPU의 작업 분배 속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 성능이 저하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AI 서버 한 대를 구성할 때 들어가는 CPU와 GPU의 개수 조합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CPU 대 GPU 비율은 1:4에서 1:8 수준이었으나, 최근 에이전틱 AI 서버에서는 이 비율이 1:1에서 1:2 수준까지 좁혀지는 추세다. 동일한 GPU 대수를 기준으로 필요 CPU 수량이 최대 8배까지 급증하는 구조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공급망 병목… "돈 있어도 6개월 대기"
이처럼 수요는 폭발하고 있지만, 공급은 여의찮다. 서버용 고성능 CPU는 TSMC의 2~3나노(㎚·10억분의 1m) 등 선단 공정에 의존하는데, 이곳은 이미 AI GPU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생산하려는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1분기 기준 TSMC 3나노 공정의 신규 주문 리드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의 시간)은 52~78주에 달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우선순위 배정도 변수다. TSMC를 비롯한 파운드리 업체들이 마진이 높은 AI GPU와 모바일 AP에 생산라인을 먼저 배정하면서 서버 CPU는 상대적으로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 여기에 여러 칩렛을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CoWoS, SoIC) 설비마저 GPU 생산에 집중돼 있어 CPU 공급 부족을 심화시킨다.
공급 부족은 이미 가격과 납기에 반영되고 있다. 과거 1~2주면 충분했던 CPU 리드타임은 최근 8~12주로 늘어났으며, 일부 제품은 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텔과 AMD 등 주요 설계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10~15% 수준으로 인상하고 있다. 인텔의 2026년 1분기 깜짝 실적(매출 136억달러) 역시 이러한 CPU 수요 회복과 단가 상승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CPU는 특정 파운드리의 공정 기술에 맞춰 설계되기 때문에, TSMC에서 만들던 CPU를 삼성전자나 인텔 파운드리로 바로 옮기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공정을 바꾸려면 설계를 다시 하는 과정에서만 2년 이상의 시간과 5억달러 이상의 큰 비용이 지출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FC-BGA·후공정' 수혜 기대
한국 반도체 업계는 CPU 직접 설계보다는 쇼티지가 파급되는 주변 밸류체인에서 기회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고성능 CPU 구현에 필수적인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 기판 분야가 가장 먼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원은 "서버·AI용 FC-BGA는 일반 PC용 대비 면적이 3~4배 이상 크고 층수도 2배 이상 많아 기술 난도가 훨씬 높다"며 "삼성전기, 대덕전자 등 FC-BGA를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소수업체에 수혜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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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첨단 패키징 소재와 메모리, 테스트 및 후공정(OSAT) 분야도 후행 수혜가 예상된다. CPU 공급 부족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선단 공정과 패키징 병목이 먼저 부각되고, 이후 완제품 출하가 본격화되면 검사 및 후공정 물량이 동반 상승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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