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개봉한 아담 매캐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은 치명적 혜성 충돌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미디어 상업화 탓에 묵살되는 과정을 우습게 묘사한 흥행작이다. 영화 속 미국은 명백한 재난 신호를 외면하거나 왜곡해 결국 아무런 대비 없이 종말을 맞는다. 이 설정은 과장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최근 수년간 한국의 대중(對中) 전략과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외교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세우며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한 외교 재편을 서둘렀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핵협의그룹(NCG) 출범 등은 그 일환이었다. 흐름 자체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했지만 문제는 또 다른 축인 중국을 바라보는 전략적 판단에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편향보다 부재에 가까웠다.
국내 주요 국책연구기관들이 발표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지난 정부에서 중국 관련 전략 문서는 급감했다. 국정과제에서 중국은 단 한 번도 명시적 우선순위로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 외교부가 공개한 2024년 외교백서에서도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동맹' '파트너십' 이라고 지향점을 담아 표현한 반면,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관리'라고만 적었다. 미국(8페이지)의 절반 수준인 분석 분량(약 4페이지)은 차치하더라도 단발성 상황이나 사례 중심 서술에 그친 내용은 텅 비어있었다.
정부의 대처가 이러하니 민간이나 산하기관 역시 중국 관련 연구나 현황 파악에 눈치를 보거나 경시했다. 한 연구기관에서는 내부적으로 "당분간 중국 관련 연구 예산은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대형 민간 연구소에서는 입지가 좁아진 중국 전담 연구원이 모두 법무법인으로 이직하며 담당자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출장 보고를 올렸지만 결재가 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업무 연관성이 있는 한 중국 기업의 초대형 물류센터를 견학하는 내용이었는데 상사는 굳이 다녀올 필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정보통신 업체의 본사 초청 역시 회사에서 필요성을 공감하지 않았다. 중국 회사와 직접 교류해 좋을 것이 없다고 보는 눈치였다고 해당 간부는 기자에게 설명했다. 그가 초청을 받았던 두 회사는 중국 굴지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인 알리바바와 화웨이였다.
중국(수출 비중 19.5%)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폭넓은 산업적 상호의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철강, 이차전지 등 우리나라 기둥 산업 역량을 추월했거나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국 기술의 현주소와 의사결정 구조를 면밀히 살피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이유를, 우리는 호오(好惡)가 아니라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다행인 점은 최근 중국 기술 굴기를 조명하고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것, 중국은 떨어지는 혜성과 같은 '예고된 위험'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변수'라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거기 있는 그것'을 보려는 의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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