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자동차용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검토
미국 상무부가 지난 9~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중 무역 협상을 앞두고 새로운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를 검토했다고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상무부가 검토한 조치에는 광범위한 반도체 제조 장비의 판매 제한도 포함돼있었다. 협상이 결렬됐을 경우 첨단 칩 생산 장비 수출만 막는 기존 조치를 넘어 일상적인 반도체 생산 장비까지 수출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스마트폰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공급망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AL 등 주요 장비 회사 매출 수십억달러가 타격받을 수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의 최근 회계연도 매출 중 약 40%가 중국에서 나왔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9~10일 영국 런던에서 2차 고위급 무역 협상을 개최했다. 구체적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국은 1차 제네바 회담 합의를 이행할 프레임워크를 도출하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미 희토류 공급과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허용 관련 합의안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미·중 간 무역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은 미국 자동차 제조사에 대한 희토류 판매에 6개월 한도를 설정했다. 무역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경우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이 같은 제한 조치를 하나의 선택지로 논의했다고 WSJ에 밝혔다. 이 관계자는 향후 이러한 조치가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반도체 규제는 미·중 무역 협상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부분은 미국, 네덜란드, 일본 기업이 만들기 때문에 서방의 영향력이 크다. 미국 싱크탱크 실버라도 폴리시 액셀러레이터의 드미트리 알페로비치 대표는 "중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이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라며 "이 카드를 쓸 것이라면 지금이 적기"라고 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제조 장비 관련 광범위한 제한 조치를 고려했지만, 결국 첨단 칩 제재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조치에 이어 중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을 저해하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더 엄격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쪽과 미국 기업의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다.
최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제프리 케슬러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국장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제품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 관련 반도체 산업에 대한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의원 질의에 "우리는 그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의 통제가 계속 효과적으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다른 나라들의 동의 없이 강도 높은 수출 제한을 단독으로 시행할 경우,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오히려 해외 경쟁사들에 유리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BIS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수출 허가 승인 절차를 강화하며 신규 허가를 거의 발급하지 않는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새로운 수출 허가 없이는 미국 기업이 기존 허가가 만료됐을 때 해외에서 계속 제품을 판매할 수 없으며, 해외 고객들이 다른 국가 제조사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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