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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권력을 좇는 자와 감당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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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보다 이미지에 치우친 정치
권력 절제·책임지는 리더십 필요
철학·신념 보는 유권자 안목 키워야

[논단]권력을 좇는 자와 감당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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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좇지 않는 자만이 진정 그 권력을 맡을 자격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유래된 이 낡은 명언은, 2025년 현재 한국 정치의 실상과 대비할 때 오히려 진실하게 다가온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한 대권주자들의 행보는 권력 획득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정치 철학과 정책, 책임 의식은 종종 뒷전으로 밀린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정치인도 효용을 극대화하는 하나의 합리적 경제 주체로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효용은 권력, 공천, 정치 생존, 당내 주도권 등으로 구체화하며, 유권자의 표는 일종의 획득해야 할 자원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선심성 정책, 감성적 구호, 자극적 갈등 프레임은 표를 얻기 위한 전략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 정치권에서 반복되는 '공정' 담론, '세대포위론', '적폐 청산' 같은 구호들이 실제 국민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 해결이 아닌 단지 선거상 전략으로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여야 주요 정치인들은 정책보다 이미지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비윤 대 친윤' 구도로 계파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당의 장기적 비전보다는 당권 확보와 세력 정리가 우선 과제가 된다. 민주당 역시 '당대표 리더십'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대체 가능성 논란 속에서 내부 긴장과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위한 논의보다 정쟁의 반복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이런 현실에서 지금 우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후생을 우선하는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오히려 그 반대의 성향을 가진 정치인을 만들어낸다. 언론도 이윤추구에 몰두해 자극적 보도로 '말이 센 사람'을 중심으로 주목하고, 정당은 정치 철학이 아닌 조직과 자금력을 가진 인물에게 더 기회를 준다. 진정 권력을 탐하지 않는 이는 현실에서 구조적 약자가 된다.


결국 이러한 행태는 민주주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표의 가치는 공공선의 선호가 아니라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유권자 역시 소비자가 되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상품'을 고르듯 공약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생존을 위한 장기적 정책 비전은 외면당하고, 진정한 정치는 '공공의 숙의'가 아닌 '정치적 소비'로 밀려난다. 그 결과는 대중의 반복된 실망과 냉소, 정치적 무관심이다.

그러나 이 구조를 바꿀 열쇠도 결국 우리 유권자에게 있다. 가장 크게 외치는 사람보다 조용히 책임을 말하는 사람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보다 왜 하려는 지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촛불 정부' 상징성과 그것이 현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의 괴리, 윤석열 정부 초기의 검찰 중심 인사 논란은 우리에겐 모두 정치적 동기의 진정성을 묻지 않은 대가였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킨키나투스'처럼, 필요할 때 나서고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 즉 권력의 절제가 곧 정치의 품격이다. 한국 정치도 이제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해야만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지지율이 높지 않더라도, 권력을 감당할 철학과 태도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는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될지를 묻기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마땅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기준은 더 지지율, 인지도, 선심성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선택의 축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권력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자에게 맡겨질 때 가장 안전하고 정의롭게 작동한다는 그 역설적 진실을 이제 유권자가 되새겨야 할 때다.

김규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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