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직회부
4·10 총선 전 본회의 표결 가능해져
통과하면 피해자 지원방식 '간접적'→'직접적'
대상·재원·형평성 쟁점도 산적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세금으로 먼저 돌려주겠다’라는 전세사기피해자특별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되도록 처리되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선(先) 구제 후(後) 회수’ 적용 피해자 범위와 수조 원의 재원 마련 방안, 다른 사기사건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등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개정안 시행까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법안은 27일 여당인 국민의힘 반대 속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처리됐다.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기까지는 앞으로 한 달 이상 걸릴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본회의 직회부가 되면 여야가 숙려기간에 해당하는 합의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기간이 30일"이라며 "합의가 안 되면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에 상정할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오는 4월10일 총선 전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 통과 시 달라지는 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식은 ‘간접적’에서 ‘직접적’으로 바뀐다. 야당이 현재 지원책으로는 부족하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기당한 보증금을 정부가 먼저 돌려주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 임차인을 우선 구제해주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들이 살던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막겠다’라는 내용도 포함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피해주택의 은행으로부터 선순위 근저당 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후순위 채권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여기에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중 하나인 임차보증금 한도를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 조정해 더 많은 사람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는 임차인에 외국인도 포함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피해자가 살던 집이 바로 경매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경·공매를 유예하는 선에서 지원책을 시행했다. 만약 전세로 살던 집을 피해자가 구입하고 싶다면 경매에 부쳐질 때 피해자에게 우선 매수권을 주고 구입자금을 대출해줬다.
피해자가 원래 살던 전셋집에 계속 살고 싶어하는 경우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신 그 집을 사 피해자가 공공임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은행 보증금 대출을 계속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저금리로 대출을 바꿔 타는 지원책도 내놨다.
선구제 범위·예산·형평성…쟁점 산적
법안이 통과되면 피해자 지원방식이 이처럼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선구제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제기된다. 개정안을 보면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 중에서도 현재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선구제 대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례로 전세로 살던 집을 경매로 우선 매입한 피해자의 경우 이미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이 다 정리돼, 선구제 대상이 아니다"며 "지금 개정안에는 이런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똑같이 전세사기를 당했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후 살던 집을 샀냐, 아니냐에 따라 선구제 여부가 갈린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기준으로 국토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총 1만2928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이 선구제 대상인지 한 명 한 명 다 뜯어보고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증금을 지급할 예산도 확보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부는 지난 27일 입장문을 통해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조 원 규모의 국민 혈세가 투입될 뿐 아니라 그 상당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미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12월 확정된 상태라 당장 재원 마련 방법이 없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일 수 있다. 국토부는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세금으로 대신 갚는 것과 다름없어,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우려된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보이스피싱이나 중고차 대출 사기 같은 온갖 사기사건 피해자들도 있는데 전세사기 피해자들만 국민 세금으로 도와주겠다는 건 불공정 이슈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임차보증금을 세금으로 다 갚아주면 전세사기가 의도적으로 더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해자들은 반드시 선구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정부는 우리가 살 곳은 마련해줄테니 빚 내서 살 집을 마련하고 사기당한 보증금 빚은 천천히 갚으라는 빚에 빚을 더하는 식이어서 도움이 전혀 안 됐다"며 "그래서 선구제 방안이 필요한데, 법이 통과된다면 최대한 많은 피해자에게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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