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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K엄마의 독박육아…아빠 참여 절실"[K인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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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출산의 경제학 : 새로운 시대' 논문 저자
마티아스 도프케 런던정경대 교수 인터뷰
"일·가정 양립 중요…교육열도 저출산 부추겨"

편집자주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출하면서 전 세계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였다. 경쟁이 치열한 노동 시장에 뛰어든 여성 직장인에게 이는 임금은 물론 커리어까지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은 ‘기회비용’이 됐다. 여성 근로자가 빠르게 늘었던 고소득 국가에서 출산율이 떨어진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80년대 여성 근로자가 많았던 고소득 국가의 출산율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이 많은 빈곤국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20여년 새 정반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네 명의 독일 경제학자들은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출산율과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등을 살펴본 논문 ‘출산의 경제학 : 새로운 시대(This Economics of Fertility : A New Era)’를 통해 고소득 국가의 출산율이 빈곤국보다 오히려 높은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바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이 연구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물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외신의 관심을 받았다.

마티아스 도프케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

마티아스 도프케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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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소득이 높지만 합계 출산율이 1명도 채 되지 않는 한국에 주목했다. 논문 저자인 마티아스 도프케 영국 런던정경대(LSE) 경제학 교수(사진)는 2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노동시장에는 여전히 상당한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며 "엄마가 육아 대부분을 도맡을 것이라는 기대감, 경직된 근무 환경으로 인해 아빠가 (근무 시간이나 공간의) 유연함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현실 등 복합적인 사회적 규범도 제약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출산율 높이기 어려운 韓…"교육열 탓에 둘째 낳기 주저"

도프케 교수는 논문을 통해 고소득 국가에서 출산율이 올라간 이유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 △육아휴직을 비롯한 가족 정책(family policy) △육아에 협력적인 아버지(cooperative father) △가족 친화적인 사회적 규범(favourable social norms) △유연한 노동시장(flexible labour markets) 등 네 가지 요인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도프케 교수에게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논문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가 두드러져 생긴 것이냐고 묻자 "한국은 모든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All factors come into play in South Korea)"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회 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가족 정책을 사용하기 쉽지 않은 환경인 데다,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쏠리면서 아빠의 육아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엄마의 경력단절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그는 또 "결혼(법정혼) 외 출산이 어렵다 보니 혼인 가정 내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혜택을 받아 그 외의 (가족) 형태가 나오지 못해 저출산 문제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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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프케 교수는 한국의 ‘교육열’도 저출산 문제에 기여했다고 봤다. 한국, 중국 등 고소득 아시아 국가에서 자녀 교육의 성공이 곧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으로 이어지는 분위기 때문에 저출산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도프케 교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아이의 성취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자녀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가족에게는 큰 부담을 준다"며 "이로 인해 부모가 1~2명 이상의 자녀를 갖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프케 교수에게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요인 중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이 가장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정부의 결단과 비전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정책을 실행하면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사용률이 높아지고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를 확보하기가 유리해 일하는 부모들의 경력단절도 감소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스칸디나비아(북유럽) 국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정부가) 정책 변화를 먼저 주도하면 남성의 육아 확대 등 사회적 규범 측면이 뒤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역할 중요…일·가정 양립 도우면 인재 영입 유리"

여성 직장인이 출산을 결심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결국 일·가정 양립이라는 게 도프케 교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부부가 육아를 적절히 분담해야 첫째에서 그치지 않고 자녀를 더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도프케 교수는 이 과정에서 "기업 문화(corporate culture)와 더불어 일반적으로는 직장 문화(workplace culture)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시로 아빠 직장인들이 자녀들과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싶어도 장시간 근로를 해야 하는 기업 문화가 형성돼 있다면 육아를 위해 승진 등 커리어상 목표를 희생해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기업이 일하는 부모에게 제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남성 육아휴직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쉽게 사용하기 힘든 제도로 평가받는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출산휴가 포함)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국가는 1970년 13개국에서 2021년 114개국으로 확대됐지만, 실제 육아휴직 평균 사용 일수를 보면 2021년 기준 여성 191일, 남성 21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도프케 교수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사회적 규범의 저항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마저도 아빠들이 남성 육아휴직을 최소로 규정된 기간보다 더 길게 사용하면 일을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겨질까봐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오늘날 많은 남성이 이전 세대와 비교해 자녀 육아에 중요한 책임을 지려 한다"면서 "사회적 변화가 느리고 점진적일 순 있지만 30~40년 전 완전히 편향됐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국가가 이미 꽤 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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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프케 교수는 일·가정 양립 정책을 쓰는 것이 직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커리어와 가정의 양립을 돕는 회사가 둘을 모두 원하는 청년층 근로자를 끌어들이는 데 이점이 있을 것"이라면서 동시에 "항상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야망 있는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빠르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꿈꾸는 청년층은 물론 여성 인재까지 영입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의미다.


아울러 그는 기업 내에서 성차별 요소를 없애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기존 가정과 기업에 이익이 될뿐더러 아이를 갖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임원 내 여성 비율이 여전히 낮고 남성 대비 여성 임금 수준도 적은 상황에서 기업 내 성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선호하는 직업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모든 측면에서 완전한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을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이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생기는 부분일 뿐 사회적 규범이나 차별의 결과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10~20년 뒤 가족의 미래 생각하고 정책 구상해야"

도프케 교수는 일과 가정이 균형을 찾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노동력 참여 증가는 기술 변화와 여성 교육 수준 향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면서 "현재 일과 가정 사이에서 겪는 갈등은 지금의 경제 현실과 이전 시대에 형성된 사회적 규범, 제도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규범과 제도는 항상 (현실에 맞춰) 조정됐다"며 "일과 가정을 균형으로 다시 맞추는 것이 이러한 조정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도프케 교수는 논문에서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쉽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얻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회적 규범이나 전반적인 노동 시장의 상황 등이 한순간에 바뀌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초저출산 문제가 ‘해결하지 못할 운명(inescapable fate)’이 아니라 사회 정책과 제도, 규범이 반영된 결과물인 만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도프케 교수는 정책을 만드는 관료들이 "지금으로부터 10~20년 후 가정을 위해 어떠한 미래를 얻으려 우리가 노력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성별 간 역할이 엄격하게 분리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평등과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건) 모두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시간을 잘 나누게끔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일과 가정 사이의 충돌이 덜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프케 교수는 네 가지 요인을 복합적으로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일부는 남성 육아휴직이나 육아·교육 관련 제도 등 정책적인 측면에서 오고 일부는 직장 문화 측면에서 온다"며 "예를 들어 주중 일부는 재택근무를 하는 식으로 일하는 데 유연성을 갖추면서 동시에 주중 근무시간을 약간 줄이게 된다면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프케 교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현 상황을 낙관하면서 "역사는 경제와 사회의 변화가 새로운 경제 현실을 만들 때 제도와 사회 규범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양립할 수 있도록 따라잡아 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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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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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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