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동료구조팀' 인력 부족에 제 역할 못해
화재 현장 대처 능력 기르는 '실화재 훈련'도 부족
5년 차 소방대원 A씨(30)가 반복되는 소방관들의 순직 사고에 애통함을 표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화마에 타오르는 건물 앞에 설 때마다 매번 결심한다.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지만, 구조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체하지 않고 현장에 뛰어들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불길은 7분도 채 안 돼 건물 전체로 번지며 소방대원들의 피를 마르게 한다. A씨는 "충분한 인력이 있다면 동료들이 화마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경북 문경 식품 가공 공장 화재로 소방관 2명이 숨지는 등 해마다 화재진압 현장에서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소방대원과 전문가는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인력 부족 문제를 꼽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고질적 인력 부족…'소방관 구조대'도 진화 작업에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총 49명이었다. 매년 5명이 구조 또는 화재 진압 현장에서 순직한 셈이다. 10년간 공무 중 생긴 질병과 장애로 업무수행이 불가능해진 공상자도 1004명에 달한다.
현직 소방대원들은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현장에 소방대원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처우 개선을 약속하거나 소방청이 안전 관리 규정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방청은 2020년 소방관들이 활동 중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안전관리 전담 인력을 상설배치하는 '소방공무원 현장 소방 활동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지난해까지 두 차례에 걸쳐 개정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정이 고질적인 인력 문제로 인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속동료구조팀'이다. 신속동료구조팀은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동료 대원을 구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는 2인 1조 구조팀을 말한다. 이른바 '소방관을 구하는 소방관'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들도 구조현장에 함께 투입되는 실정이다. 화재 진압에 투입되는 인력이 부족하기에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소방대원은 "시 단위 소방서에서는 통상 구급대와 구조대에 4~5명의 인원이 배치되는데 이마저도 일부 인원이 휴가를 가면 서로의 팀에서 인력을 한 명씩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소방관을 구하기 위한 구조대는 현장 밖에서 대기해야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이들도 같이 구조에 뛰어들곤 한다"고 말했다.
군 단위에서는 도심지역보다 적은 수의 구조대원이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통상 일선 소방서는 크게 구조대와 화재진압대, 구급대 3개 팀으로 나뉘어 최소 4~5명의 소방대원이 배치된다. 하지만 군 지역에서는 수난사고와 화재 사고 등 여러 건의 사고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한팀이 찢어져 3명의 인원만이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소방대원 A씨는 "여유 인력이 부족으로 교통사고 현장에 3명이 출동하고 수난사고 현장에 2명이 투입되는 일도 있다"며 "더욱이 서울과 달리 지방은 다른 관서에서 추가 구조인력을 파견받아야 하는 구조다 보니 인력 지원이 늦어 위험한 상황도 생긴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현장"…예산 부족에 한계
예산 부족도 소방대원의 실무 교육이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2년 기준 전체 소방예산은 총 7조1437억원이지만, 이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9.4%(약 4조9644억원)였다. 전체 예산에서 장비 구매에 사용된 비용은 5.7%(4071억원)에 그쳤다.
특히 일선 소방대원들은 예산 문제로 화재 현장과 흡사한 현장에서 상황 대처 능력을 기르게 도와주는 '실화재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일선 소방서마다 훈련 장비를 갖추기 어렵고, 실제와 동떨어진 훈련 환경인 경우도 있다.
소방대원 B씨(29)는 "실화재 교육을 위한 장비는 각 지역 소방학교에 한 대밖에 없다"며 "실제 화재 현장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기에 교육 환경이 현장과 괴리감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예산과 인력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 재원은 전체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자율적으로 소방관들이 장비를 사거나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한국의 소방관들은 생활안전구조 업무까지 투입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소방관보다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편"이라며 "넓은 업무 범위 대비 인력이 부족해 인력·예산 모두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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