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헤르만 폰 카이저링의 '방랑하는 철학자'<4>
우리가 자유를 얻자면 자연을 이겨내야 한다. 사실 자연을 극복한 곳에서는 자유의 가능성이 저절로 찾아왔다. 뉴욕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미국 생활은 어디에서나 자연을 이기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미국에서 인도의 이상을 정반대 방법으로 실현했다. 이곳 생활은 유럽에 비해 단순해 보인다. 유럽보다 널리 보급된 편리한 점(편의 시설)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잉여분도 가능한 한 없앴다. 필요한 것은 매우 인색하다. 예컨대, 식당에서 서비스도 거의 없다.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애당초 대다수 사람이 인건비를 줄이고 욕심에 걸맞게 더욱 큰 이윤을 남기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단순한 식사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조차 그렇게 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고 사치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더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예 노동에 기초한 경제와 같은 결과를 완벽하게 낳은 조직화다. 차이가 없지 않다. 노예 노동제에서 주인은 부덕하고, 현대 생활은 단순히 합리적 욕구를 채워준다.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무관한 채 금욕 수행자만큼이나 초연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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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이런 모습이다. 유일한 서구식 생활법이다. 이런 해법이 상책일까? 한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서구식 인간 존엄성을 개인에 무심한 인도와 러시아와 비교해보자. 자신과 타인을 어떤 경우든 똑같이 존중하는 것처럼 유익한 것은 없다. 그런데 상반되어 보이는 그 두 개념은 사실 같은 뜻이다. 다만, 서구적 개념은 현실에 적합한 표현에 의미를 둔다. 자치 정부들을 비롯해 모든 것이 살아갈 권리는 보호받는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다. 권력이 권리를 창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권리는 심리적으로 '그것을 지키는 해법'으로 표현된다. 자신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희생된다. 그 기회를 활용하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존심이 없는 민족에게서 인간의 존엄은 점점 더 사라진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은 애당초 아무리 거칠었더라도 차츰 내면이 발전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폭력에 사로잡혔다. 인도와 러시아의 온화한 인간성이 아니다. 서양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이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헤르만 폰 카이저링, <방랑하는 철학자>, 홍문우 옮김, 파람북,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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