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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FOMC 성명서에 맞서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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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이 통화정책 결정 배경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한 건 불과 30년이 채 안 된다. 1920~1930년대 영란은행장을 역임한 몬터규 노먼은 "결코 설명하지 말고 용서를 구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중앙은행은 정책 유연성과 관계없이 신비로움을 보존하는 게 시장 영향을 극대화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책 결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지난 세기 중앙은행의 통념과도 같았다.


변화는 1990년대 이후 나타났다. 특히 전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Fed가 변화를 이끌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중앙은행 정책 투명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4년 2월 그린스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준금리 인상을 직접 발표해 주목받은 데 이어 같은 해 8월 회의 이후엔 우리가 오늘날 일컫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공했다. 회의 결과를 담은 성명서다.

특히 그린스펀은 당시 성명에서 "적어도 한번은 이런 액션이 충분한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혀 더 이상 금리 인상이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 이후 성명서에선 단어 선택이 주목을 받았다. 경기가 약세라면 성명서는 "리스크가 경제 약세를 키울지 모르는 조건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됐고, 경기 과열이 우려된다면 "리스크가 높아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 붙는 것이다(벤 버냉키 ‘21세기 통화정책’).


2004~2006년 Fed의 성명서는 시장의 신뢰와 안정을 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엔 성장세가 강하고 실업률이 떨어져 긴축이 불가피했다. Fed는 2004년 6월 ‘측정할 수 있는 속도로’ 금리를 되돌리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한번에 0.25%포인트를 넘어서서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FOMC 회의는 2년간 17차례 열렸다. 기준금리는 최종 5.25%포인트까지 상승했지만 실업률은 5%를 넘지 않았다. 꾸준한 메시지가 경기 연착륙을 도운 셈이다.


반면 메시지가 모호해 시장을 어리둥절케 한 사례도 있었다. 2003년 6월 Fed는 기준금리를 1958년 이후 가장 낮은 1%로 내렸다. 시장에서는 긴축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Fed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Fed 베이지북에 따르면 댈러스 연방은행은 "차주들이 모기지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낮은 금리를 묶어놓길 원한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8월 Fed는 성명에서 "상당기간 정책 완화를 유지할 계획"임을 보다 분명히 했다. 조만간 긴축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이후 장기금리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달 초 Fed 성명서와 의장의 발언 온도 차가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인플레이션 완화에도 여전히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매파적인 성명서에도 불구하고 제롬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 둔화’ 발언에 시장은 환호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지표가 발표되면서 일주일 만에 상황은 바뀌었고 실망감이 커졌다. 급격한 금리인상에 지친 시장이 ‘믿고 싶고 듣고 싶은 쪽’으로 해석한 결과다. 한국은행은 ‘시장과 성명서의 인식차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Fed에 맞서지 말라’는 월가 격언이 있다. 지금은 물가하락의 증거가 성명서에 담길 때까지 인내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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