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화의 피스앤칩스]韓·中 반도체 카드 뽑았는데 왜 美가 튀어나와?
中, 반도체 최대 소비국…삼성·SK 현지 공장도 여럿
반도체 산업 동반자에서 경쟁자 관계로 변모한 中
美는 중국 반도체 굴기 싹 자르는 규제 강화
美·中 패권 경쟁에 韓 반도체 산업 '고민' 커져
[아시아경제 김평화 기자] 요새 반도체 기사를 보면 꼭 세트처럼 따라오는 두 개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과 '미국'이죠.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건 알겠는데, 왜 국내 반도체 산업이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어려움이 크다는 얘기가 나올까요? 반도체 산업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 때문입니다. 양국에서 수년간 반도체를 매개로 쌓은 정(?)이 많다 보니 미국 손을 단번에 잡을 수도, 그렇다고 중국과 함께 있을 수도 없는 형국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자로 점차 변화하는 한·중 관계를 두고 일각에서는 차라리 미국의 견제가 국내 산업엔 이득이라고 평가하는데요. 산업과 안보, 외교가 복잡하게 얽힌 반도체 실타래를 풀어보겠습니다.
최대 소비국 중국 힘입어 국내 수출 1위 반도체…삼성·SK 중국 공장도 여럿
반도체를 흔히 수출 효자라고 합니다. 수출이 주력인 국가에서 주된 비중을 담당하기 때문에 얻은 명칭이죠. 반도체는 지난해까지 9년간 연속 수출 품목 1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엔 반도체 수출액(1280억달러)이 전년 대비 29% 증가하며 총수출에서 19.9%를 차지했습니다. 요새 반도체 시장이 침체하면서 수출에도 우려의 시선이 있지만, 여전히 총매출을 책임지는 주요 품목입니다.
반도체 주요 수출국은 어디일까요?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국내 반도체 수출의 약 40% 비중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년 동안 대중 수출 비중이 가장 많이 늘어난 산업이 반도체라고 하니, 중국 시장이 국내 반도체 업계엔 중요할 수밖에 없죠. 중국이 반도체 최대 소비국인 점도 중요도를 높이는 요소입니다.
국내 사업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여러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산시성 시안(낸드플래시 공장)과 장쑤성 쑤저우(패키징 공장)에, SK하이닉스는 장쑤성 우시(D램)와 충칭(후공정), 랴오닝성 다롄(낸드플래시) 등에 공장이 있죠. 반도체 초기 공정을 중국 공장에서 진행한 후 국내 공장으로 수입하거나, 중국 현지 조달을 위해 공장을 둔 경우입니다.
중국은 그간 이들 기업의 현지 공장 신설과 운영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공장 유치를 통한 경제 효과와 현지 수요 대응 등의 이익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하이닉스반도체 시절인 2004년 중국 투자를 결정할 때 채권단 관리를 받던 터라 곳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요, 중국 정부가 융자 지원과 법인세 면제, 공장 부지 무상 제공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캐파)의 38%가, SK하이닉스 D램 캐파의 44%가 중국에 기인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 동반자에서 '경쟁자'로 모습 바꾼 中
그러던 중국은 2015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서 역할 수정을 꾀하게 됩니다. 반도체 기술력이 한국 등 주요국 대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바로 '중국 제조 2025' 전략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조업 강화에 힘썼는데요, 반도체 중요성이 워낙 큰 만큼 외국산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자체 구축하는 데 힘쓰겠다는 발표였습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인센티브와 보조금 지급, 세제 혜택 등의 대규모 지원으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썼습니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 등을 중심으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최근까지도 분주한 모습입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2014년부터 2030년까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자 투자하는 규모는 1500억달러에 이를 전망입니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 덕분일까요? SMIC와 YMTC는 최근 잇따라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SMIC는 14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수준에서 정체하다가 최근 7㎚ 미세 공정을 도입해 반도체를 생산했다고 합니다. 세계 파운드리 1, 2위 사업자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3㎚ 공정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큰 성과인 셈이죠. 또 YMTC는 232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해 연내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적층 수준이 곧 기술력인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현 세계 최고층은 SK하이닉스가 개발한 238단 4차원(4D) 낸드플래시입니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급격히 향상하다 보니 국내에선 중국이 장기적으로는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특히 메모리 반도체 안에서도 D램보다는 비교적 기술 난도가 낮은 낸드플래시에서 더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최근 YMTC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의 공급사로 선정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며 이같은 가능성에 힘을 실었죠. 물론 7㎚ 공정이나 232단 낸드 개발 소식이 진짜가 아닐 수 있거나 기술 개발을 했더라도 실제 양산과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 등에선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5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D램은 5년, 낸드플래시는 2년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中 반도체 굴기 싹 자르려는 美…韓, 실익 중심의 외교 노력 필요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복합 방정식으로 향하는 중에 또 다른 변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죠?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패권 경쟁을 진행하며 중국 중심으로 특정 산업이 종속돼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는 현대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성이 큰 데다 기술 안보 핵심이다 보니 주도권을 쥐려는 의지가 분명합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설계), 일본(소재·장비), 한국(메모리 반도체·파운드리), 대만(파운드리)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꾀하는 칩4(Chip4) 협의체를 모색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미국은 퀄컴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 주류인데, 자국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한다며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CSA)을 지난달 내놓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신설하면 25% 세액공제를 해주는 내용도 포함했습니다. 이때 해당 기업이 중국에 10년간 투자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드레일 조항을 뒀죠. 여기에 인공지능(AI)용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중국 수출을 허가제로 바꾼다든지, 14㎚ 이하 미세 공정에 쓰이는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안을 살피는 등 연일 중국 반도체 굴기를 때리는 모습입니다. 반도체 미세 공정에서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장비는 이미 수출을 금하고 있고, 그보다 낮은 단계인 심자외선(DUV) 장비도 수출 금지를 위해 물밑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니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시도인 거죠.
한국으로선 참 난감합니다. 그간 중국에 들인 투자액이 상당한 데다 매출 주요 비중을 중국에 두고 있다 보니 최대 소비 시장을 마냥 외면할 순 없는 상황인데 말이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선 칩4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성이 국내에 더 이득일 수 있다고 평가하지만, 중국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은 고민이 깊어집니다. 일각에선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잠재적인 경쟁자인 만큼 미국 규제가 오히려 국내엔 이득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지금부터 주가 2배 이상 뛴다" 데이터센터 지을때...
결국 특정 기업 혹은 산업 차원을 떠나 국가의 외교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미국과 보폭을 맞추되 중국에 충분한 이해를 구해며 실익을 얻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묘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어찌할 수 없지만 국내 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만큼 체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최근 이를 위해 K-칩스법이라 불리는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법'이 발의됐는데요, 국회는 정쟁에 바쁜 나머지 법안 통과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텐데 말이죠.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