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말레비치 작품 75점, 17일 전시 종료 후 반환 못해
경제제재로 러 운송편 중단, 유럽 거쳐 반환 러 측 거부
세종문화회관 23일까지 철수, 다른 보관 창고 물색 중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1915년作)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소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1915년作)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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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김동표 기자] “작품들은 어제 전시장에서 철수했지만, 아직 돌려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른 (보관) 창고를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와 카지미르 말레비치 작품 등 국보급 미술작품 75점이 러시아로 반환되지 못한 채 서울의 수장고에 발이 묶였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러시아 경제 제재가 심화하면서 작품을 반환할 항공편이 사라졌다.

문제의 러시아 작품들은 지난 17일 종료된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전’을 위해 국내에 들어온 출품작들이다.


전시 주최 관계자는 22일 "작품들은 어제 전시장에서 철수했지만, 아직 돌려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른 (보관) 창고를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 측과 운송 편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반환이 쉽지 않아 현재 국내 보관처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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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후원한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말 ‘어려운 정국(The difficult political situation)’을 이유로 해외 전시회에 대여한 미술품 조기 반환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은 한국의 전시 주최 측에 이달 3일까지 전시 후 작품을 조기 반환할 것을 통보한 바 있다.


주최 측은 조기 전시 종료 시 재정적 손실 등을 이유로 계약상 의무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예정대로 17일까지 전시를 진행했다. 문제는 경제제재가 강화되며 러시아 운송 편이 운행 중단돼 작품 반환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탈리아 밀라노 미술관에도 러시아 문화부가 대여 중인 자국 미술품 조기반환을 요구하는 등 러시아 정부가 서구권 봉쇄조치를 예견하고 미술품 회수에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행기 직항 확보가 어려울 경우 유럽을 거쳐 반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시 주최 측에 따르면 앞서 러시아가 일본과 이탈리아에 대여한 미술품이 조기반환 과정에서 핀란드 국경 통과 중 유럽연합(EU)의 고강도 제재로 현지 세관 당국이 전격 압수한 사례가 있다. EU가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 항목 중 예술작품이 포함되면서 유럽을 거친 운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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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발이 묶인 작품들은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국보급 작품이다. 칸딘스키와 말레비치 등 예술가들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혀 탄압받은 일대기가 전시를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들이 속한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20세기 초 전쟁과 혁명 시기 러시아 혁명에 동조한 전위적 예술가 집단이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당과 혁명을 찬양하는 예술만을 필요로 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대표작 ‘절대주의’ 등을 당국에 몰수당했던 작가 말레비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이다. 그는 당시 간첩 혐의로 실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그 작품이 다시금 국외에서 수난을 겪는 상황은 역사의 역설이라는 평가다.


현재 이 작품들은 세종문화회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세종문화회관에 따르면 철수까지 계약된 기간은 23일이다. 21일 전시장 철수 작업은 완료됐다. 수장고에서는 23일 이동해야 한다. 전시 주최 측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다른 보관 창고를 알아보는 일은 발등의 불이다. 아울러 러시아 측과 안전한 작품 반환 방법을 놓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제 정세와 맞물려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항공 정책을 관장하는 국토교통부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나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공조를 맞춰야 하는 입장에서 미술품 반환을 위해 예외적으로 항공기를 띄우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내 출발 항공편이 아니더라도 미술품을 제3국에서 전세기를 통해 반환하거나 중국 등을 거쳐 육로로 러시아에 전달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단체 미술품 반환 방법과 경로는 해당 단체와 주최 측이 결정해야 하며, 국토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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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예술감독을 담당한 김영호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는 "예술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평화를 지향하는 활동"이라며 "인류 보편적 가치에 엇나가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개혁에 나서는 게 예술가에게 주어진 책무인데, 이번 사태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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