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가정폭력·아동학대 등 적용 범죄 구체화
소송 부담 줄이고 적극적 법집행 기반 마련
경찰 '현장 대응력 강화' 이제부터 시작

‘160만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생하는 대략적인 범죄 건수입니다. 강력범죄, 지능범죄, 교통범죄, 사이버범죄 등 범죄 유형도 다양하고 그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범죄 인사이트>에서는 국내 주요 범죄 양상 분석, 범죄 예방·대처법 소개를 비롯해 치안 현장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입니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지난해 11월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뒤흔드는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서 위협을 받는 피해자를 두고 경찰관이 현장을 이탈했다. 이어진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에서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가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당하는 참변이 발생했다. '부실 대응' 논란이 거세지자 경찰은 고개를 숙이고,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당한 직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경찰관의 형사책임을 감면 또는 면제해주는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은 이러한 상황에서 추진됐다. 경찰 활동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으나, 반대로 경찰은 점점 소극적으로 변했다. 현장 경찰관들의 법집행 부담을 줄이고, 국민 안전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경직법 개정에도 탄력이 붙었다.


본회의 통과한 '형사책임 감면' 경직법 개정안은

이 같은 경찰의 염원이 담긴 경직법 개정안은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경찰관의 범죄 대응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행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어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으로 적용 대상을 한정한다. 이는 세부적으로 살인, 상해·폭행, 강간, 강도,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에 국한된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관은 추가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진압·예방 활동을 펼친다. 범인 검거 과정에서 가해자가 반항하며 경찰관에게 대응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관의 직무 수행이 '불가피한 것이고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졌으며, 해당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 정상을 참작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소관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적용 대상 범죄를 한정하지 않은 개정안을 의결했으나,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과정에서 추가됐다. 집회·시위 현장에 적용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경찰권 강화 내지 오·남용될 우려 등을 반영해 감면 대상 직무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이는 경직법 개정을 반대한 시민사회 등의 의견과 국민 보호를 위해 경찰관의 엄정한 법집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안의 취지를 절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찰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경찰관의 신속한 판단과 적극적인 법집행을 가능케하고, 국민 보호를 위해 더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경찰청은 경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번 입법에 대해 '국민과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키라'는 준엄한 명령과 시대적 소명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서울경찰청에서 신임 경찰이 물리력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경찰청에서 신임 경찰이 물리력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경찰 현장 대응력 강화, 이제 시작이다

이번 개정안 통과는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처음 부실 대응 문제가 불거졌던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근본적 대책이라 보기도 어렵다. 인천 사건의 본질은 경찰관의 소명의식·자질 문제라는 비판을 경찰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뒤따를 형사책임이 두려워 대응을 하지 못하고 현장을 피한 게 아니라, 흉기를 든 가해자를 앞에 두고 자리를 이탈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법 개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현장 경찰관들에게 "더욱 당당한 법집행으로 국민을 보호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언제나 소송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정당하게 직무에 임했음에도 소송으로 인해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게 된다면 어떤 경찰관이라도 현장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경찰청이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 중 피소된 경찰관을 지원하고자 2018년 6월 도입한 '경찰법률보험' 지원은 지난해 10월까지 총 159건이 이뤄졌다. 2020년 인사혁신처가 경찰법률보험을 벤치마킹해 도입한 '공무원책임보험' 지원도 지난해 10월까지 총 179건에 달한다. 매년 400여명의 경찰관이 직무 관련 사건으로 입건되고 소송까지 진행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 개정안 시행은 이러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일각에 남아 있는 경찰권 오·남용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경찰청은 교육·훈련 및 지속적인 관리·보완을 약속했다. 개정안의 취지가 경찰 내 명확히 정착되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실제 적용 사안이 발생할 시 진행경과를 모니터링·환류를 실시할 예정이다. 법조계와 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매뉴얼도 만들 계획이다.

AD

이와 함께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앞서 경찰은 '현장 대응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범죄피해자 보호 ▲적극적 법집행 기반 ▲실전형 교육훈련 ▲현장맞춤형 장비 등 여러 개선책을 마련했다. 현장 경찰관 인력 충원과 인사·처우 개선 문제도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 법이 개정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막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출발선에 선 경찰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