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꽃’으로 불리는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후배들 선망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묵묵히 업무에 임해오던 고위 공무원들조차 "승진한다면 말리고 싶다"는 식의 적극적인 의사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정부 부처 차관급 고위 공무원은 "‘공직에 입문한 후배들에게 고위직 만큼은 피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그동안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업무를 하면서 좌고우면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고위직이 된 이후 보람 보다는 업무로 인해 오히려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아찔한 일을 겪거나 목격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공직사회의 변화와 최근 이슈 등을 고려해보면 고위 관료의 이런 푸념이 무리는 아니다.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관련 국장이 지난해부터 재판을 받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이 고위 공직자는 업무 외에 ‘정무적인’ 압박을 동시에 받는 상황이 번번이 발생한다. 그 만큼 감내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선 몇 해 전 3조원 규모의 초대형 선박 발주를 위해 예산을 관철하는 과감한 정책 결정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해운 시황이 회복됐기 망정이지, 선박 건조가 끝난 후에도 해운업황이 지지부진했다면 예산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 지적 역시 불 보듯 뻔한 시나리오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한다고 하지만 고위 공직자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고위직 인기 하락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풍토 확산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요인이 분명 작용한다. 하지만 맡는 업무가 늘어나는 만큼 정무적 위험 역시 증가하는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직 관료는 검찰조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왔을텐데, 이런 업무를 모를 리가 없다’는 식의 압박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고위 관료는 과장급 이하 젊은 공직자들 사이에선 이미 인기 없는 자리가 됐다. 공직자윤리법상 과장급 이하 공무원의 이직에 대해선 큰 장애가 없는 반면, 국장급 이상은 업무연관성이 있는 곳으로 옮기려면 퇴직 후 3년을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대학 교수직도 고위직의 경우 제한을 받는다. 정책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정치로 권력의 무게 추가 이동하면서 꺾였다. 현 정부에서 1급 관료로 승진하기 위해선 주택을 소유하지 않거나 한 채만 가져야 한다. 능력보다 주택 유무가 우선인 셈이다. 한해 400명 가까운 사무관이 승진을 피해 자발적으로 이직을 선택하는 배경이다. 평소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정부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국장 자리가 전혀 부럽지 않다"는 말을 남겨 회자되기도 했다.
고위 관료는 실무선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책임자다. 정책이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고위직의 능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권교체기엔 관료의 역할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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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워라벨’이 중요하다고 해도 공직사회에는 여전히 승진을 바라는 공무원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잘 만든 정책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고위 관료 역시 많다. 하지만 정무적 책임에 대한 고위 공무원의 불안감을 간과할 순 없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고위직은 하지 말라"는 속내를 내비치는 관료가 단지 한 두 명에 그칠까. 묵묵했던 고위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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