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약자들의 총성없는 서부 이민 정착기
켈리 라이카트 감독 '퍼스트 카우'
사냥꾼 식량 담당 쿠키와 중국인 킹 루, 빵 만들어 돈 벌지만…
자본·권력 가진 이들의 경쟁에 밀리는 사회적 약자의 척박한 현실
미국에는 동물 별명을 가진 주가 두 곳 있다. 루이지애나(펠리컨)와 오리건이다. 후자는 비버 주로 불린다. 19세기 초까지 숲과 강가에 흔했다. 가죽은 유럽에서 고가에 팔렸다. 미국 동부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사냥꾼이 몰려들었다. 영화 '퍼스트 카우'에서 쿠키(존 마가로)는 이들을 따라다니며 식량을 조달한다. 그는 먹거리를 찾으러 숲속을 뒤지다 벌거벗은 동양인 남성을 발견한다. 실수로 러시아 사냥꾼을 죽이고 숨어지내는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다. 쿠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둘은 개척지 마을에서 재회한다. 공통점이 있다. 여느 이방인과 달리 총기가 없다. 사금을 캐지도 않는다. 새 출발에 필요한 자금만 원한다. 둘은 빵을 만들어 돈을 번다. 영국에서 파견된 팩터 대장(토비 존스)이 오리건에 처음 들여온 암소에 접근해 우유를 도둑질한다. 부드러워진 빵은 불티나게 팔린다. 부르는 게 값이다. "다음엔 더 많이 해 와요!" "매일 최대한 만들고 있어요." "값을 올리겠지, 바보가 아닌 한."
당시 오리건은 미지의 땅이었다. 바람은 매섭고 토양은 척박했다. 이렇다 할 특산물도 없었다. 설사 있더라도 동부 이송까지 수지가 맞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건너간 1840년대부터 인구는 급증했다. 일반적으로 서부 개척은 민간인들이 주도했다. 세속·물질적 야망이 우선시됐다. 오리건에선 조금 달랐다. 동부인 1만여 명이 선교 보고서를 접하고 풍요의 땅으로 인식해 이주했다. 인디언 개화·개종은 실패했다. 하지만 민간인 정착을 유도해 공동 관리하던 영국을 사실상 내쫓았다.
오리건 이주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연방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했다. 알아서 법을 만들고 질서를 확립해야 했다.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서부 정신이 굵직한 뿌리를 내린 배경이다. 질서와 효용 속에서 공생하는 자치 기구를 만들었다. 정착자가 늘어날수록 기존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흥했다. 식료품 가게, 음식점, 세탁소, 주막, 전당포 등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쿠키와 루의 소박한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휩쓸리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루는 암소를 빗대어 자조 섞인 농담을 한다. "브르타뉴의 프로망뒤레옹 종이라니, 소가 나보다 혈통이 좋아. 귀족이 따로 없군."
미국 역사에서 인종주의는 정치 형태가 안정화되기까지 걸림돌로 작용했다. 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 이민자에게 가지는 편견과 견제는 상당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인 이민자의 피해도 못지않았다. 이들은 서부 개발의 주요한 노동 자원이었다. 값싼 임금을 받고도 성실히 일해 기업가들이 선호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던 유럽계 이민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 애초 인종적 편견도 있었다. 중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과 상인들을 통해 아편, 도박, 매춘 등을 하는 미개인으로 각인돼 있었다. 배척 운동으로 이어져 훗날 중국인 이민 금지법까지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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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미국에 도착한 초기만 해도 백인들은 우호적이었다. 쿠키와 루의 관계처럼 특별한 인종 차별도 없었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끈끈한 우정으로 나타내 비극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서정적 표현을 덧칠해 소수자 간 우애 또한 미국을 일으킨 근간임을 직시하게 한다. 물론 현실은 오리건 땅만큼이나 척박했다. 중국인은 백인에게 불리한 증언조차 할 수 없었다. 수만 년 전 먼저 이주해온 인디언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백인과의 공생은 자본주의의 필요에 따라 이뤄진 협력에 불과했다. 유럽에서 비버 가죽의 인기가 식으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쿠키와 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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