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빠른 응징…당사자엔 치명적 피해
[온라인 자경단, 정의인가 분노인가]
上. 여론재판과 신상털이
커뮤니티에 피해 호소 공론화
이름·전화번호 등 줄줄이 공개
"직접 찾아가 인증" 글까지
법적 처분 전 무차별 신상공개
엉뚱한 사람 피해 입는 경우도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이정윤 기자] "OOO 신상 제보 받습니다.", "XXX 직접 찾아가서 인증한다."
최근 차를 옮겨 달라는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부은 대구의 한 식당 주인과 아이들이 탑승한 차에 폭언을 한 부산 해운대 맥라렌 차주 사건이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었다. 이 두 사건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공론화됐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분노한 회원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논란을 빚은 당사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비롯해 운영 중인 가게에 대한 정보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도 속속 올라왔다. 곧이어 성난 누리꾼들의 '응징'이 가해졌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빗발치는가 하면 온라인에 등록된 업장 평가에 별점 테러도 이어졌다. 실제로 가게를 찾아 항의성 쪽지를 붙이는 이들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사회 고발의 창구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각종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여론을 형성하거나 부조리를 고발하는 신문고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일이 생길 때 수사기관을 찾기보다 커뮤니티에 자신의 사연을 먼저 하소연하는 이도 많이 생겼다. '여론 재판'을 통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온라인 자경단'이 법보다 빠르다는 인식도 많아졌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촉발된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수사기관의 움직임을 이끌어낸 사례도 다수 있다.
반면 이런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법적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이뤄지면서 당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춘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신상털이 과정에서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얼마 전 막말 논란을 빚은 대구 렉스턴 차주 사건에서도 이 일과 관계없는 업장이 가해자가 운영하는 곳으로 잘못 지목돼 엉뚱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해운대 맥라렌 차주 사건도 초기엔 해당 차주가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무차별적인 신상털이가 이뤄졌으나, 결국 양쪽 주장이 엇갈리는 바람에 진실공방이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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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가 극단적으로 진화한 예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n번방 사건 당시 성범죄자 등의 신상을 공개한 디지털교도소와 주홍글씨다. 당시 격투기 선수이자 유튜버인 김도윤씨는 '밀양 성폭행 사건' 관련자라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됐으나 동명이인으로 밝혀졌고,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엉뚱하게 성범죄자로 몰린 바 있다. 신상털이는 명예훼손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엄연한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정의 구현이라는 목적으로 나선 일 때문에 한순간에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8880건이던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발생 건수는 2019년 1만6633건으로 5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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