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작심삼십일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가지씩 소망을 품는다. 금연, 독서, 운동, 자격증 취득 등. 그러나 우리에게는 유구하게 이어 내려온 의지박약의 전통도 있다. 바로 ‘작심삼일(作心三日)’. 지어먹은 마음이 사흘도 못 간다는 말 앞에서 우리는 새해의 다부진 소망을 머쓱한 망각 속에 지우고 일상을 무료하게 이어간다. 삼일에 한 번씩 새로운 꿈을 꾸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되풀이해서 치르는 일상의 결전 속에서 결심을 새롭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올해 나는 어떤 소망을 자그마치 ‘작심삼십일’로 실천 중이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루에 만이천 보 걷기. 처음 시작은 어깨 통증 때문이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날들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몸이 굳어지는 게 체감되었다. 평소 걷기를 즐겨하는 편이지만 생활 속의 걸음으로는 삼천 보에서 육천 보를 넘기 힘들기에 매일 다부지게 만이천 보 걷기를 결심한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영하 19도의 날, 눈이 오고 바람 부는 겨울날은 걷기가 고행이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으니 걷자 하고 걸었다. 걷다 보면 많은 신비, 많은 선물을 만난다. 미처 다 삭이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 화나 분노, 원망 같은 부정적 마음들이 사라지고 복잡한 일들도 차분히 정리된다. 걷기 중에 떠오르는 얼굴들은 그대로 기도가 된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우선 순위가 정해지고 오래 방치한 나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다.
걷다 보면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이 세계가 얼마나 큰 선물을 주는지도 알게 된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겨울 나무가 얼마나 강인한지도 알게 된다. 오후의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운지도 알게 되고 앞서 걷는 이의 기우뚱한 어깨에서 고단한 생을 짐작한다. 골목 풍경은 매번 얼마나 새로운지…. 차를 타고 지나칠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내 눈높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경이.
걷기란 누군가에게는 한가한 놀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시간을 다투며 일하고 공부하는 나도 여유가 있어서 걸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작심삼일’을 하루하루 늘려 ‘작심삼십일’로 걷다 보니 어깨 통증은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더 유연해졌다. 주변을 더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고 앉아서 하는 일에 집중력이 커졌다. 걸으면서 이 연약한 세계의 속살을 보고, 걸으면서 자란다. 이 땅과 이 거리를 구체적으로 만나면서 이 우울한 시절을 무사히 건너리란 희망 또한 조금 더 커졌다.
걷기 외에 내가 주변에 권하는 또 다른 ‘작심삼십일’은 하루에 한 장 사진 찍기다. 사진을 찍는 일은 바라보기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을 세심하게 공들여 바라보라. 그러면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선물을 품고 있는지, 그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쉽게 놓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많은 것들이 멈춰 선 시절, 지금 우리는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혹 길을 잃고 있는가. 어디에 있든 우리가 만약 걷고 또 바라보고 있다면 길은 거기에 있고 거기서 만들어진다. 그 길 위에 내가, 우리가 있고 세계는 확장된다. ‘작심삼십일’이 ‘작심삼백일’이 될지, 또 무엇을 발견할지,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아윌비백, 다시 돌아와 더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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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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