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안정적 직장의 대명사인 동시에 복지부동ㆍ무사안일이라는 오명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역대 정부마다 공무원의 적극행정을 유도하고 적극행정에 따른 책임을 면제해주는 제도와 인센티브 등을 주고 있지만 공직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왔다. 감사원이 지난해 펴낸 '적극행정 활성화 장애요인분석' 보고서에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 2967명의 공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공직자들이 적극행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복수응답)로는 공직문화 등 환경적 요인(33.7%)이 가장 큰 것으로 인식됐다. 불합리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절차 등 제도적 요인(26.2%), 적극행정에 대한 공직자의 책임의식 부족 등 개인적 요인(20.9%),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리더십이나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내부통제 운영 등 조직적 요인(16.6%) 등의 순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공무원들은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요인에 대해 "책임지기 싫어하는 공직자 인식, 자기가 처리하지 않고 문제를 다음 담당자에게 떠넘기는 책임의식 부족" "하면 할수록 책임과 부담감은 늘어나고, 매번 그런 장애요소들과 대응해야 한다는 부정적 인식, 정해진 틀 안에서 사고하는 방식" 등을 꼽았다.
"정권은 유한하나 관료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다. 공직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근본적 문제로 정치를 꼽는다. 행정부가 입법부, 사법부와 함께 3권 분립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행정부는 오래전부터 정치 우위에 놓여왔다. 정부 정책도 행정부 주도가 아니라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정치인의 입각은 순기능도 분명한 만큼 새삼 문제로 삼긴 어렵지만 정치논리가 정부정책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져 정책신뢰를 얻지 못하고 이는 적극행정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작용된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한 무더기 자료 삭제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구속되면서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구속 이후의 기소와 재판까지의 과정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죄든 무죄든 검찰의 영장청구와 법원의 구속결정만 놓고 봐도 이번 사태가 관가에 미치는 직간접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조작과 삭제라는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다만 합법적이라면 정책적 판단과 결정, 집행에 법적 잣대를 들이민다면 공무원들로서는 공황(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탈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고 공약을 실천하고 책임지는 이들은 결국 공무원, 공공기관 등이다.
역대 정권을 돌아보면 공약의 규모와 파급력, 반발력이 클수록 당대 정부나 다음 정부에서 여지없이 감사와 수사, 문책 등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자원개발이 그랬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업 등이 그랬다.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반기를 들 수 있는 공무원이 사실 몇이나 되겠는가. 이 때문에 이번 구속으로 관가에서는 임기 말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이 팽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적극행정과 소극행정의 계산기를 두드려본다면 적극행정을 해서 얻는 이익은 적고 도리어 불이익이 더 클 수 있어 보인다. 소극행정을 하면 손해는 보겠지만 적극행정으로 야기될 수 있는 손해보다는 매우 적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모든 정책과 대책에 공직사회의 적극행정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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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잘 대처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의 경우 대통령의 지시로 전문가집단이 컨트롤타워가 돼 철저하게 방역에 중심을 맞춰 적극행정을 이끌어낸 결과물로 평가된다. 이른바 K방역에서 얻은 교훈을 임기 말의 정책과 대책에서, 공직사회의 적극행정을 유인하는 데 활용했으면 한다.<이경호 편집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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