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보건교사 안은영' 그녀가 교사인 이유
학교에는 괴물이 산다. 그것은 도처에 있다. 교장 선생과 함께 하는 아침 의식이 진행 중인 교실 안에, 학교 설립자의 커다란 초상화가 내걸린 복도에, 그리고 굳게 잠긴 지하실 안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홀린 듯 선생을 따라 체조하고 수업받는다. 어쩌면 그것이 눈에 띄어도 무관심하게 다시 교과서로 눈을 돌릴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것을 예의주시하는 이가 존재한다. 긴 복도 끝에 있는 보건실의 교사, 그의 이름은 안은영이다.
지난달 25일 넷플릭스가 세계에 공개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 고등학교의 보건교사가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세계 안에는 죽거나 산 자들이 남긴 '젤리'라는 이름의 욕망 덩어리가 넘쳐나고, 우리의 주인공 안은영(정유미)에게는 이를 알아보고 퇴치하는 능력이 있다. 오염된 젤리가 악령으로 변하면 안은영은 '비비탄 총과 무지개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을 휘둘러 그와 싸우며 아이들을 보호한다.
2015년 출간된 정세랑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독특한 연출 세계로 유명한 이경미 감독의 지휘를 거쳐 한층 기이하고 신비롭게 각색됐다. 하지만 '학원괴담'이라는 본질적 색채만큼은 조금도 잃지 않았다. 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괴담의 단골 배경이었다. 무한경쟁, 성적에 의한 서열화, 학생 인권 탄압 등 다양한 병폐를 양산하는 입시 위주 교육이 괴담의 기름진 토대를 제공했다. 한국 호러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1998년작 '여고괴담'은 그 잔혹한 현실에 도사린 공포와 분노가 성공적으로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공포 역시 학교라는 배경 안에서 실질적 양분을 얻는다. 학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젤리들은 좁은 교실에 갇혀 정해진 규칙만 따라야 하는 아이들의 억압된 욕망과 사념체다. 1회에서는 억눌린 성적 욕구로부터 탄생한 젤리 몬스터가 아이들을 광기와 흥분으로 몰아갔다. 2회에서는 입시지옥의 스트레스와 좌절로부터 비롯된 악령이 교실을 지배한다. 3회에서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시달린 아이의 분노가 괴물을 키워낸다.
무너지기 직전의 학교에서 안은영은 최후의 파수꾼으로 괴물과 맞서며 학생들을 지킨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웅 안은영에게 더 중요한 정체성은 바로 '교사'다. 이는 '옴잡이' 혜민(송희준)의 일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사람들에게 불운으로 다가오는 '옴'을 물리치는 옴잡이. 그는 특정 구역에서 임무에 나서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안은영은 전학생 혜민이 옴잡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혜민에게 평범한 생을 주고 싶어 한다. 좁은 세계에 갇혀 살던 제자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안은영의 모습은 교사의 사명감을 환기한다. 극에서 제일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다.
원작자 정세랑 작가는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선생님들이 매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싸우고 있다는 생각으로 만든 캐릭터"가 안은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경미 감독은 극 중 밤마다 학교 위에서 유영하는 '수호신' 같은 고래 젤리 이미지로 원작자의 정신을 뒷받침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즌1의 마지막 회에서 학교는 끝내 붕괴된다. 그 자리에 곧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하지만 근본적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괴물은 다시 자라날 것이다. 우리에겐 현실을 단번에 바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매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안은영의 정신이 간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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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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