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부재에 경찰·인권위,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 지지부진
유족 휴대전화 준항고·포렌식 집행정지 신청에 수사 사실상 중단
"어떤 자살은 가해" 피해자 2차 가해 이어져…"불안·위협 시달려"

15일 오전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5일 오전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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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김수환 인턴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지 16일로 100일째다. 그의 극단적 선택은 우리 사회에 충격과 함께 무거운 과제를 동시에 던졌다. 성추행 사건을 변호하던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그는 의혹이 불거진지 하루만에 생을 포기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성추행 사건의 진상 규명과 2차 가해 방지라는 숙제를 어디까지 풀어냈고 또 어떤 도전을 받아왔는지 살펴봤다.


◆경찰ㆍ인권위에 넘겨진 진상규명은 '지지부진' = 고 박 전 시장을 둘러싼 수사와 조사는 '가해자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사실상 중단됐다. 고 박 전 시장은 7월9일 서울 성북구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 비서 A씨가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공소권이 사라졌으며 경찰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의 경위와 원인을 밝혀야 하는 변사사건 수사,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ㆍ묵인 의혹 수사를 통해 해당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현재 사회적 이목이 크게 쏠렸던 것에 비추어,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는 거의 진전이 없다시피 하다.

7월24일 고 박 전 시장 유족 측이 유류품인 업무용 휴대전화에 대한 준항고와 포렌식 절차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하면서 수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졌다. 경찰은 준항고 결정이 나와야 압수수색 재신청 등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서울시 직원들의 성추행 방조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부분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김주명 전 서울시 비서실장 등 피고발인 4명과 참고인 20여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는 연내 결과 발표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인권위는 지난달 24일 서울시청 현장조사를 진행했지만 서울시 전ㆍ현직 핵심 관계자들은 여전히 인권위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가 지지 부진한 가운데 친여 성향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고 박 전 시장은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어떤 자살은 가해"…권력형 성폭력이 낳은 질문 = 진상규명은 진척을 보이지 못하지만 피해자를 상대로 한 2차 가해는 여전히 활발하다. 고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소설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에서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최종 형태의 가해"라는 문장이 회자되기도 했다. 피해자 측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0일에 대해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신상 공개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멈추지 않는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미투 이후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가 여러 건 있었다"며 "가해자의 죽음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등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다시 성폭행 피해자를 향해 책임을 전가하면서 피해자들은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고 박 전 시장 사례처럼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는 '권력자'의 죽음이 많은 이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2차 가해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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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정치인과 같은 공인일수록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고 박 전 시장의 사례에 대해 아쉬움도 표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중적 이미지가 형성돼 있는 정치인이나 권력가들은 (성범죄 공개 후) 자신의 이미지가 엎어지는 데 대한 공포감과 불안감이 극대화 되면서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사회적 리더라는 공적 책임감을 감안하면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김수환 인턴기자 ksh205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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