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속 '직장 내 성추행'의 진짜 문제…'피해자다움'과 '2차가해' [김가연의 시선 비틀기]
美 폭스뉴스 내 직장 내 성폭력 사건 다룬 영화 '밤쉘', 지난 8일 개봉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부터 피해자 2차가해 비판…관객 호평 이어져
20일 기준 14만255명 관객 동원…관객 10명 중 6명 이상 여성
전문가 "2차가해성 발언,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핵심 이해 못 한 것"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편집자주] ※ 장면 묘사와 대사 등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직장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밤쉘)이 화제다. 밤쉘은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2016년 미국 보수 매체 폭스뉴스 내에서 벌어진 직장 내 성추행 고발 사건을 그린 실화 영화다.
성폭력을 주제로 다룬 만큼 상영관을 찾는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일 CGV 성별 예매 분포에 따르면, 관객 10명 중 6명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객들은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뤘다"며 호평을 이어가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응원관람'에 나서는 등 영화에 대한 지지와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를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최초 고발자인 그래천 칼슨(니콜 키드먼 분)이 아닌, 당시 메인 앵커였던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분)와 허구 인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분)을 주요 인물로 내세우면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작용하는 2차 가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또 "어느 성추행 피해자가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내나", "돈을 노렸다", "몇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해고되니 고발한다" 등의 대사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 요구하는 사회적 풍토를 비판하기도 한다. 피해자다움이란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일컫는다.
이같은 비난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직장 내 성범죄의 핵심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라는 데 있다. 자신의 경력 및 생계 등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이후 해고나 부서이동 등 부당한 인사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의식은 "월급 주는 사람을 변태라고 불러봐", "웃기고 있네 여자들이 바보야? 누가 네 옷을 벗겼는데 그걸 증명하라며 나체로 걸으란 소리잖아"라는 극 중 켈리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나도 전에 같이 일했는데 그런 적 없었다" 등의 가해 남성의 권위와 평판 또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서 작용한다. 문제는 이같은 성희롱·성추행이 분리된 장소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데 있다.
'밤쉘' 또한 이같은 장면을 대비해 묘사함으로써 2차 가해의 논리를 뒤집는다. 극 중 로저는 "성관계를 대가로 승진을 시켜주겠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충성심을 보이면 원하는 것을 주겠다. 충성심을 어떤 방식으로 보일 것인지는 네가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다. 성적 착취 및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는 피해자를 향한 2차가해성 발언이 이어지는 근본적 원인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왜 이렇게 늦게 말하게 됐냐', '그런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직장생활을 유지했냐', '가해자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냐' 등의 질문들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 피해자들을 공격하던 논리"라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2차가해성 발언들"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고발이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위력에 의한 각종 압박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 대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위력이 이 성폭력 사건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위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사실을 밝히려 용기를 내고 결심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또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가해자가 본인보다 직급이 높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사람일 때, 어떻게 피해를 당한 직후부터 불편함을 바로 명시적으로 표현하겠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장에서 해고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관계적으로 문제가 없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발언"이라며 "지금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을 텐데, 그 여성들이 '사건에 대해 고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할 때 저런 무수한 공격과 비난, 낙인을 받겠구나'라고 쉽게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피해를 말하기가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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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밤쉘은 지난 8일 극장 개봉했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밤쉘은 개봉 13일째인 20일 오전 10시 기준 14만25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진행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분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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