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882년 벌어졌던 임오군란은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임금의 호위부대가 월급 체납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궁궐까지 쳐들어간 사건이다. 13개월 동안 못 받은 월급이 쌀로 나왔는데, 그마저도 겨와 모래가 섞였고 여기에 분개한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우발적 사건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병사들을 반란까지 이끈 것은 월급 체납과 얽혀있던 전세난 고충이었다. 당시 한양의 주택 가격과 전세 가격은 폭등하고 있었지만 조정에서 1년 넘게 월급조차 주지 않으면서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게 주효하게 작용했다. 당시 전세는 보통 1년 계약이었고 13개월간 수입이 없던 병사들은 한양 전셋집에서 나와 오도 가도 못할 처지에 이르자 반란을 일으켰다.
한양의 주택난은 이미 이때부터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도와 궁궐방위를 담당하는 호위부대 병사들은 모두 근무지인 궁궐 근처에 살아야 했기 때문에 한양에서 전셋집을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양은 인구 10만명 안팎을 목표로 지은 계획도시였지만, 이때 이미 인구가 50만명을 넘어서면서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 종로 일대 초가집 매매가격은 1852년 1500냥 안팎에서 1862년에는 2500냥으로 10년간 66% 급등했다. 같은 기간 당시 물가의 척도인 쌀의 가격은 1% 내외에서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가 대비로도 한양의 집값이 엄청나게 폭등했던 셈이다.
게다가 고위관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양의 부동산에 투자해 초가집을 사서 기와집으로 개조하며 가격을 2배 이상 부풀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1754년 이후 조정에서는 집값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아예 주택매매와 전세금지령을 내려 부동산가격 상승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왕실이 도리어 가격상승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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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은 왕자나 공주의 결혼식이 열리면 궁궐 인근의 주택을 시세의 3배 이상 비싼 값에 매입해 별궁을 짓고 결혼선물로 하사했다. 왕실에 혼사가 생긴다는 소식만 들리면 땅값이 널을 뛸 수밖에 없었다. 임오군란 직전인 1881년에도 당시 왕세자였던 순종의 혼례가 있었고, 고종이 아들 결혼을 위해 안국동에 화려한 별궁을 짓자 병사들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도 문제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청빈낙도가 군자의 덕이라고 500년 넘게 외쳤던 유교국가의 군주와 선비들의 이중적인 행태에 분노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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