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자전적 단편 소설, 지인 사생활 침해 논란
자서전+허구 뜻하는 '오토픽션'
실제 사건에 상상력 덧대 현실감 극대화한 소설
해외서도 사생활 침해 논란 끊이지 않아

김봉곤 작가 / 사진=문학동네·연합뉴스

김봉곤 작가 / 사진=문학동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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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임주형 인턴기자] 지인들과 나눈 사적 대화를 자신의 저서 안에 동의 없이 인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김봉곤 작가 소설이 모두 판매 중단 조치된 가운데, 김 작가의 소설 장르인 '오토픽션'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오토픽션은 자서전을 뜻하는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대어 집필한 소설 양식이다.

그러나 이같은 소설 양식이 작가 주변인에게 사생활 침해 등 불필요한 피해를 준다는 지적과 창작의 일부로써 용인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9일 출판사 '문학동네'는 김 작가가 집필한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단편 '여름, 스피드' 등이 실린 소설집을 판매 중단하고, 논란이 된 부분을 수정하지 않은 발행본 7만부를 수정본으로 교환해주기로 했다. '창비' 또한 단편 '그런 생활'이 실린 김 작가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판매 중단했다.

앞서 지난 10일 자신이 '그런 생활'에서 C 누나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라고 밝힌 한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 작가가 자신의 허락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무단 인용했다고 폭로하면서 이번 사태가 처음 불거졌다. 이 여성은 해당 소설로 인해 자신의 사생활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지난 17일에는 자신이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밝힌 한 남성도 김 작가가 무단으로 자신이 보낸 메시지 내용을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김 작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 동성애자가 전 연인과 다시 접촉하는 내용을 그린 이 소설에서는 실제 인물이 김 작가에게 보냈던 메시지 내용이 그대로 인용돼 논란에 휩싸였다. / 사진=문학동네

김 작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 동성애자가 전 연인과 다시 접촉하는 내용을 그린 이 소설에서는 실제 인물이 김 작가에게 보냈던 메시지 내용이 그대로 인용돼 논란에 휩싸였다. / 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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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성정체성을 공개함)한 김 작가는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성애자의 삶과 심경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평을 받으며 이른바 '퀴어 문학'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김 작가 소설의 특징은 작가 자신이 실제 경험한 일과 허구의 스토리를 뒤섞어 현실감을 극대화한다는 데 있다. 김 작가는 이같은 자신의 소설 양식을 오토픽션이라고 칭해왔다.


문제는 현실감을 위해 실제 사건, 주변 인물들을 소설 속으로 여과 없이 끌어들이면서 제3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 A(28) 씨는 "퀴어 문학을 집필한다는데 동성애자들이 가장 민감한 부분이 강제로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아웃팅' 아니냐"며 "프로 작가라면 당연히 그런 점을 고려해 신경 써서 인용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작가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실제 구매했다는 또 다른 직장인 B(27) 씨는 "소설가의 기본이 창작인데, 대화 내용을 무단으로 복제한 건 기본이 안 됐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며 "최소한 다른 사람 이야기를 가져올 거면 충분한 논의를 거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창작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영인 문학 평론가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은 개인적 '잘못'일 수 있어도, 그 자체로 '문학적 비윤리성'의 충분한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김 작가의) 윤리적 사죄는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문학 기법에 대한) 논쟁을 봉합해 버리는 것은 더 나쁜 방식"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유년 시절 삶을 정밀하게 묘사한 오토픽션 '나의 투쟁' 시리즈를 펴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가족들에게 절연 당하기도 했다. / 사진=유튜브 방송 캡처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유년 시절 삶을 정밀하게 묘사한 오토픽션 '나의 투쟁' 시리즈를 펴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가족들에게 절연 당하기도 했다. / 사진=유튜브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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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토픽션의 사생활 침해 논란은 과거부터 지속해서 불거져 왔다. 한국보다 앞서 오토픽션이 인기를 끌었던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소설 '나의 투쟁'을 펴내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나의 투쟁'은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출판된 6편 짜리 자서전 시리즈로, 작가의 유년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및 기타 가족 구성원의 사생활을 여과 없이 노출하면서 가족들에게 소송을 당하고 끝내 절연당하기까지 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유미리 작가가 지난 1999년 출간한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또한 지인을 등장시켰다가 법적 분쟁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유 작가는 소설을 출판 금지당하고, 해당 지인에게 1300만원을 물어주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07년에는 공지영 작가가 한 일간지에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하려다가 공 작가 전 남편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원에 연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연재가 무산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작가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문제의 소설들은 타인의 사생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드러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며 "성생활, 아웃팅 등은 확실하게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사안이므로, 아무리 문학을 하더라도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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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은 최근 한국에서도 자주 보이는 문학 양식"이라며 "민감한 부분을 잘 추려 각색을 철저하게 해서 이런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임주형 인턴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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