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전쟁 가능성…국가적인 곡물조달시스템 구축해야
코로나發 물류·인적자원 이동제한 지속땐 곡물가 상승 불가피
쌀 자급률 97% 달하지만 밀·옥수수·콩·보리 평균 15% 불과
글로벌 곡물엘리베이터 등 인프라 사업으로 유통망 확보 필요
[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식량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지난달 21일, 한국을 비롯한 주요 20개국(G20) 농업장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식량안보 위기 가능성에 주목했다. 복잡하면서도 편중된 식품공급 사슬과 제한조치를 함께 들여다보고, 국제협력을 강화하자는 데에 뜻을 모은 것이다. 당장 폭발할 문제는 아니더라도, 언제든 국가 간 갈등이나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물류 및 인적자원의 이동 제한으로 세계의 식량 공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하면서, 수입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먹거리 값이 오를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97%에 달하지만 밀, 옥수수, 콩, 보리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평균 15% 수준에 그친다. 이는 단순한 서류 속 숫자가 아니라, 외부 충격으로 우리의 한 끼 값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봉쇄ㆍ물류단절…식량안보 위기감↑=현재 국제 곡물 가격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20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월대비 3월 기준 주요 곡물의 국제가격은 풍작 등의 영향으로 밀(-5.2%), 대두(-2.0%), 옥수수(-1.7%) 등이 하락했고, 태국 쌀(6.6%) 정도가 다소 상승했다. 과거 2010~2011년 세계 곡물 공급량 부족에 기인한 가격 파동 사례와 달리 물류 차질에 따른 국제곡물 가격 급등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2020년 한국의 국가식량안보지수(NFSI) 추정치는 0.57로 전년과 동일하며 '녹색단계'에 해당하는 안정적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물류시스템 위축이 장기화 될 경우 원자재 수입 의존 국가의 식품 가격까지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은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낮아 국제 곡물가 변동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쌀 자급률은 97.3%로 높은 수준이지만 그 외 주요곡물의 경우 밀 1.2%, 옥수수 3.3%, 콩 25.4%, 보리쌀 32.6%에 그친다. 특히 최근 빵이나 면류로 소비가 급증한 밀의 경우 지난 2016년 1.8%까지 개선됐다가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김용준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펜데믹(세계 대유행)의 장기화에 따른 국제물류시스템 중단과 국제 곡물 생산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면, 식량 부족국가의 위기가 확대되고 보호무역주의 부활로 전 세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프 항에 위치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곡물 수출터미널.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물류기업인 오렉심그룹(Orexim Group)과 곡물 수출터미널 지분 75%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에 소재한 곡물 수출터미널의 운영권을 가지게 됐고, 터미널은 지난해 9월 준공돼 가동을 시작했다.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원본보기 아이콘◆유통망 확보, ABCD의 곡물 시장 주도 속 '시동'= 글로벌 곡물시장에서 수급과 가격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다국적 곡물메이저들이다.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ㆍ벙기(Bunge)ㆍ카길(Cargil)ㆍ루이드레퓌스(LDC) 등 4개 기업, 이른바 'ABCD'가 세계 곡물 유통량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인 곡물조달시스템은 구축돼 있지 않다. 시스템을 통한 곡물조달은 글로벌 곡물엘리베이터ㆍ곡물터미널 사업 등을 전개하고 유통망을 확보해 안정적인 물량이 국내에 들여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삼성물산, STX, 한진 등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aT그레인컴퍼니가 곡물 메이저와 합작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실패했다.
최근에는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의미있는 성과가 잇따른다. 지난 11일 팬오션은 미국법인을 통해 이토추인터네셔널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EGT의 지분 전량인 36.25%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EGT는 현재 미국 워싱턴주 롱뷰항 소재 최신식 수출터미널과 몬태나주 소재 4개 공급시설을 보유ㆍ운영 중인 업체다. 팬오션은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국제 곡물 유통의 80% 이상을 장악하는 곡물메이저와의 관계강화를 통해 자사의 곡물사업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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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물류기업인 오렉심그룹과 곡물 수출터미널 지분 75%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최대 수출항 중 하나인 미콜라이프 항에 위치한 곡물 수출터미널의 운영권을 가지게 됐다. 지난해 9월 이를 준공ㆍ가동, 현재 유럽연합(EU)과 중동 및 아프리카(MENA)에 곡물을 수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 현재까지 밀, 옥수수 판매 물량은 약 30만톤에 달하며, 중국향 판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포스코인터내셔널 측 설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EU와 MENA 지역은 그동안 경쟁이 치열해 곡물인프라를 다량 보유한 메이저 회사들이 점유했던 지역으로 그동안 기업들이 진출하기 어려웠다"면서 "현재 코로나19 등으로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공급이 매우 불안정해 가격 변동성이 큰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정적으로 곡물을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50만톤 규모의 곡물수출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곡물 시장 변동에 안정 대응에 노력하면서 식량사업의 밸류체인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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