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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와 대통령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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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와 대통령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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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해 13명이 기소됐으나 법무부 장관이 느닷없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의문과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공정한 재판,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법무부가 공소장을 국회에 제공하는 것을 거부한 전례는 전혀 없으며 적법하지도 않다.


공소장이란 검사가 수사한 결과, 증거가 확보되고 범죄사실이 명백하다고 판단해 수사를 종결하면서 피고인의 인적사항과 죄명ㆍ공소사실 등을 기재한 문서로 이를 법원에 제출해야 비로소 공소제기가 된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공소제기가 있는 때에는 지체없이, 늦어도 1회 공판기일 전 5일까지 공소장을 피고인에게 송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나 그 가족 등도 소송기록의 등사를 신청할 수 있다. 피의사실공표금지가 적용되는 수사와 달리 재판의 공개주의 원칙과 함께 공소장을 재판 참여자들이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국회법과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되면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주무부처 장관이 소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무상 비밀에 속하는 경우라도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공소장은 이 같은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법무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제대로 소명하지도 않았다. 법무부에서는 최근 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법무부 훈령에 불과하고 법률과 같은 상위법에 저촉된다.


법무부 장관이 법을 위반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고 이어 언론에 공소장이 모두 공개되고 말았다. 불법을 저지른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소장을 공개한 언론기관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공소장의 내용은 엄청났다. 송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경찰뿐 아니라 대통령비서실 산하 8개 기관이 조직적으로 동원돼 하명수사ㆍ후보매수ㆍ공약지원과 같은 공작을 자행했다. 당시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비위첩보가 경찰에 하달된 이후 청와대는 경찰 수사상황을 21회에 걸쳐 보고 받았다고 한다. 가히 청와대가 불법선거를 주도하였음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공소장의 내용은 수사기관의 최종 수사 결과에 해당되므로 당장은 검사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재판을 통해 공소장의 내용이 진실된 것인지 밝히는 것이기에 법무부 장관이 이를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웠단 말인가.


검찰은 최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비서관까지 조사했지만 4ㆍ15 총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수사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청와대의 그 많은 조직을 주도면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비서실장과 대통령뿐이다. 송 시장은 대통령의 '30년 친구'이며 대통령의 소원이 그의 당선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이미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됐음에도 청와대는 1개월 넘게 아무런 이유없이 그 집행을 거부하고 있다.

공개된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은 다른 공무원보다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는 등 대통령이 35회나 언급됐다. 경찰의 수사상황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6회나 보고된 것을 보면 대통령까지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검찰뿐 아니라 국민은 대통령을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통령은 계속 침묵하고 있다. 이미 피의자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 받아 5년간 국가를 대표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큰 봉사자에 불과하다.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말과 행동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다. 국민 대다수의 신뢰를 잃고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돼버린 대통령의 운명은 이미 끝이 보인다. 그래도 국민들은 대통령의 불행을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기에 아직 기회는 있지 않을까.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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